자빠지는 피아니스트

중디 월드뮤직 라디오 #212

by 이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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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빠지는 피아니스트


공중에 떠있는 이 사람

아마 중력 때문에 0.3초 안에 바닥에 나가떨어질 것은 뻔하다.

그는 그 찰나 동안 모처럼 평소에 하지 못했던 깊은 생각을 했는데

크게 나누어 세 가지다.


1.

나는 왜 이렇게 넘어져야만 했을까. 넘어지지 않을 수는 없었는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이것이 신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억울한 생각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무고함에 신념을 얹자 문득 신에게서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고 그러자 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떨어져서 살아난다면 더 이상 신 따위에게 의지 하지 않고 거칠지만 인간적이고 시적으로 살겠노라고 생각을 굳혔다.


2.

내가 만약 이대로 바닥에 떨어져 죽는다면 나의 존재가 없는 이 세상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내가 죽는 마당에 세상 걱정할 땐가.

그렇지만 그는 역시 걱정을 떨칠 순 없었다.

그때 좀 더 불후의 명곡을 만들겠다고 욕심부려 아직 곡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고 얼마 전에 학생들에게 불필요하게 화낸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엄격하지만 섬세하고 인간미 넘치는 스승으로 그들의 기억에 남고 싶었는데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자 0.2초간이나 참았던 눈물이 결국 흘러내려버렸다.


3.

잠시 상념에 빠졌던 그는 필요 이상의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고 그것에 갑자기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좀 더 희망적인 생각으로 0.1초 후의 미래를 살아갈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따른 능동적인 대처방법을 생각했다.

우선 그는 피아니스트이므로 생명과 같은 팔과 손가락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므로 손보다는 다른 부위가 먼저 땅에 닿을 수 있게 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고 생각했다. 특히 머리 부위는 어쩌면 손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고, 허리 부위는 잘못하면 신경을 마비시켜 하반신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역시 충격흡수에는 엉덩이만 한 부위는 없다고 결단을 내리고는 그 명석한 결단에 아주 짦게 흐뭇한 미소를 띠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짧은 생각을 마치자 그 남자의 몸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가벼운 충격에 지금까지 했던 세 부류의 생각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이어간다.




Face plant - Kepa Lehtinen

https://youtu.be/BKYoEXhNAeo?list=PLal9sIB3XTQyJ18jPIuEyqAUiber32ZF-

중디 월드뮤직 라디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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