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디 월드뮤직 라디오 #218
기운이 넘쳐서
공책 첫 페이지를 연필로 꾹꾹 기운을 넣어 써 나갔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를 열었을 때
앞 페이지의 욱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흔적이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계속 쓰려고 하니
새롭게 글씨를 쓰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앞 페이지의 흔적이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앞 페이지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페이지에 썼다.
그러자 네 번째 페이지도 찢어버려야 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여덟 번째 열 번째...
공책의 두께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자 짝수 페이지들은
중년의 머리가 빠지듯 손도 대 보지 못하고 쑥쑥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순간순간 너무 과도한 기운 때문에 인생이 반쪽이 되었다.
깜빡 잊고 책받침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
Orphelin - Lisza
https://youtu.be/rxM8Y4mH9E4?list=PLal9sIB3XTQwDjtqkMFEu4NhTMdhp4h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