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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Apr 29. 2022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

Marianne von Werefkin

Marianne von Werefkin(마리안느 폰 베레프킨 / 1860_1938 러시아)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이상한 원근 축


그녀의 그림들은 늘 어디론가 강한 흡입력으로 빨려 들어가는 집중된 방향성이 있는데 그것은 원근법을 무시한 블랙홀처럼 왜곡되어 빨려 들어가는 이상한 포인트이다 그곳이 어디일지는 그녀만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런 풍경 속에 얼굴 없는 인물들은 고뇌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숙명적인 빨려 들어 감에 대한 좌절 같은 것이리라.     

칸딘스키와 함께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를 만든 그녀는 초기에는 러시아의 렘브란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사실주의 그림을 그렸으나 그녀가 서방으로 나오자 그것들은 곧 자신에게 거추장스러운 유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고호와 고갱의 인상파의 영향을 받는 듯싶더니 곧바로 뭉크를 껴안은 표현주의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 그곳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참한 기분


어설픈 사랑     


마리안느는 러시아 귀족 출신의 자녀로 어린 시절부터 호화로울 정도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고 그 엄청난 유산은 그녀에게 평생 연금으로 지급되고 있어 그저 놀며 그림만 그려도 될 정도였다.

그러던 그녀가 그림을 배우던 시절 같은 클래스의 4살 연하의 남자 Alexej von Jawlensky(알렉세이 폰 야우렌스키)를 만나 모성애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가진 것 없이 남루한 청년은 그녀에 비해 그림에 대한 소질도 부족했지만 그녀는 그의 얼마 안 되는 재능을 밀어주고 싶은 모성애적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면 막대한 유산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고 그저 동거 상태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심지어 그를 밀어주기 위해 자신의 붓을 10년간이나 멈추는 가히 모성애적인 희생을 감수하였다.

야우렌스키는 덕분에 자신의 지명도가 올라가고 화가로서의 안정기가 되자 어이없게도 마리안느의 하녀 Helene Nesnakomoff(헬렌 네스나코모프)와 붙어서는 아이를 출산한다. 

법적으로는 남남이므로 어쩔 수 없었던 그녀는 그 후로도 야우렌스키와 하녀 그리고 그들을 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하기도 하는 이상한 사랑이 이어진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 혁명이 일어나면서 마리안느의 연금은 완전히 끊기고 야우렌스키는 그녀를 떠나 하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야우렌스키는 거처를 비스바덴으로 옮겼고 처세술이 강한 약삭빠른 야우렌스키는 그곳에서 표현주의 화가로 명성을 얻는다.

갑자기 궁핍해진 마리안느는 포스터나 엽서그림을 그리고 근근이 생활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은 상업적으로 팔지는 않았다. 말년에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가 창작에 집중하도록 그의 시녀, 간호사, 가정교사 그리고 창녀가 되었었다. 대체 나는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야우렌스키(자화상)
-너 어제 뭐했니?    -아무 짓 안했어요   - 짓? 안물어봤거든




그렇지만 그것은 헛된 낭비는 아니었어요     


과학의 진보에 맞춰 예술도 변혁되었다. 고대 신을 그리던 예술은 어느 날 인간을 재발견하게 되고 관념에 갇혀있던 인간은 현실과 실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 만이라면 예술은 언제나 과학의 하위에 포함된 의미 없는 것이리라. 지금껏 혁신적인 예술의 장르들은 겉으로는 과학적 이론에 충실한 삽화 같은 것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실은 그 낱낱의 신비한 예술 언어들은 수식으로는 증명이 불가능한 아직 과학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시정이다. 과학의 증명과 이해로는 따라올 수 없는 감동을 이용한 시적인 과학인 것이다. 감동은 수식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 밑에 깔면 마리아나의 그림은 단순히 표현주의라는 틀로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한 빛나는 감동들이 가득 차 있다. 그러한 감동들은 인위적인 실험에 의해 나올 수 없는 불행, 슬픔, 향수, 우울과 같은 숙명의 토대이어야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 위에서 살았고 스스로 그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 감동의 농도가 짙은 것이다.

그녀는 가볍고 직설적인 인물화에서는 표현되지 못하는 사우다드를 풍경 속의 얼굴 없는 작은 인물들로 더욱 뚜렷하고 짙게 표현한 것이다.


Ave Maria


[작품감상]

https://youtu.be/v-D-9yOqh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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