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라는 표현은 T.S Eliot의 서사시 '황무지'(The Waste Land) 중에서 1부 ‘죽은 자의 매장’에 있는 말이다.
'황무지'라는 시는 정신적인 메마름, 일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믿음의 부재, 생산성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이며 그것은 현대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형상화 한 과거의 영국 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봄이 되면 흔히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물론 Eliot의 서사시와 연관시켜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는 그 시와는 관계없이 사람들 각각의 추억이 투영되어 생산된 개인적인 표현과 다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는 ‘잔인한 4월’이라는 의미도 분명 평생 지울 수 없는 향수처럼 나에게 녹아 있는 추억이 만든 개념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특히 4월이 되면 사춘기처럼 밀려오는 그 봄의 향수병은 어김없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는 거역하지 못하는 홍역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왜 4월일까. 봄이란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일상은 아니다. 특히 4월의 온도는 겨울이거나, 여름이거나 앞뒤의 계절만이 오락가락하는 혼란한 시기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도 종잡을 수 없는 혼돈기가 된다. 3월은 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추워서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가장 봄을 동경하는 시기이고, 이미 봄의 출구를 나와서 눈 앞의 여름이 보이기 시작한 5월은 더 이상 지나온 봄을 회상하기에는 너무 더워지기 때문이다.
4월의 따뜻한 봄 햇살 아래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피크닉을 하고 싶었던 꿈은 번번이 무산되고, 꽃잎 날리는 가로수 길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낭만은 의외로 차가운 바람으로 감기에 걸려버리거나, 모처럼 핀 봄꽃들은 냉정한 바람에 무참히 떨어져 버렸다. 결국 그동안 기대했던 봄은 그저 황량한 환절기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 차가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방황뿐이다. 이처럼 4월은 3월에 강하게 기대했던 따뜻하고 낭만적인 꿈을 깨뜨리는, 그저 혹독한 배반의 계절이다. 그런 기억들이 누적되다 보니 4월은 왠지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의 4월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다른 양상의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괴물 바이러스는 따뜻한 봄이 되면 확산이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더욱 기세가 강해졌고 또한 그것의 어두운 불확실성은 정신적 잔인함을 넘어서 현실적 공포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구조 조정하려는 것 같다.
반면 꽃들은 우리와는 상관없이 덕분에 한적한 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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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Eliot의 서사시 '황무지'(The Waste Land) 중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 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 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설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 오는가?
사람들이여, 너는 말하기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 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여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른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恐怖)를 보여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 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야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야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하지만 히야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 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숙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 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를 한 벌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이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에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 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삶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마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 보면서
언덕을 너머 킹 윌리 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 로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 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music)
-Angelo Branduardi-
그대의 늙은 머리 희어지고 잠이 많아져 난로 옆에서 졸게 되거든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라
그리고 한때 그대의 눈이 지녔던 부드러운 눈매와 같은 깊은 그늘을 꿈꾸라...
그대의 기쁨에 찬 우아한 순간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그릇된 혹은 참된 사랑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지를
그러나 어떤 이는 그대의 순례와 유랑 혼을 사랑했고
그대의 변한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음을...
그리고 난로가의 붉게 타는 방책 옆에 몸을 굽히고
조금은 슬프게 중얼거려라
남몰래 높은 산 걷기를 얼마나 좋아했고
그의 얼굴을 별무리 속에 감추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