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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Jul 15. 2020

[소설] 해변의 사투-4

4 공허한 건물과 한가한 직원들 


 해변의 서쪽 끝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가가 있다. 제주도의 옛 정취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개발이 이루어진 요즘으로서는 흔한 모양의 모던하고 건조한 상업건물이다. 원래 그곳은 마을 옆에 바다를 마주한 황무지로 옛날에는 그 옆 우물가로 물을 길어 오는 아낙들의 길목이었지만 지금은 마을의 개와 고양이들 외에는 아무도 가지 않던 먼지 날리는 황량한 곳으로써 하늘과 맞닿은 소나무들의 조용한 안식처였다.

 건물의 윗 쪽에는 <글로벌 푸드 센터>라는 영문의 간판이 붙어있는 이 모던한 건물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디자인이 최근의 유행이고 제주 외곽의 바닷가 마을로서는 원래 제주도적이라는 형태의 건축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다. 모두 슬레이트 지붕의 낮은 옛 가옥들 뿐이다. 그러니 이 건물이 주변과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채택한다면 그것을 건축물을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또한 주변에 있는 3층 이상의 건물들은 모두 이런 모던한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현실적으로 합당한 모양이라고 해도 특별히 뭐라 말할 수 없다.

 이곳은 글로벌이라는 이름답게 세계 각국의 음식점이 12개 정도가 하나로 붙어있고 넓은 커피숍이 2개 있으며 2개의 건물 사이에 있는 넓은 공간에는 야외 식당 테이블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얼듯 보면 12개 국가의 민속 음식점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일본, 중국, 베트남 음식점이 있고 나머지는 치킨, 떡볶이, 국수 등 글로벌이라는 이름과는 동떨어진 메뉴의 식당들이다. 국가를 표방한 식당들도 실은 매우 한국적인 맛의 음식으로서 그 나라 사람들이 먹어보면 이국적인 한국의 맛이 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모두 "퓨전"이란 말을 붙여 넣었는데 그것은 왠지 그 전문성의 왜곡을 합법적으로 정당화하는 말처럼 보인다.

그리고 건물의 주변 곳곳에는 화살표 모양의 방향유도 이정표들이 있는데 모두 영문으로 쓰여 있고 그 영문표기가 가르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안 수 있는 사람은 아미 그 건물의 관계자들 뿐일 것이다. 그것은 유도 표시 라기보다는 건물의 세련됨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더 가깝다. 그 영문 유도 표시 중에 유독 한 군데는 한글로 쓰여있는 표시가 있는데 <남당 암수>라고 쓰여있다. 예부터 바닷가 바위틈에서 용천수가 나오는 곳을 말하는 것인데 실은 <남당 암수>라는 한문 표기 또한 정말 예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까 하는 의심도 생긴다. 아무튼 한글로 <남당 암수>라는 글자만 영문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 고딕체로 외톨이처럼 끼어있는 모습은 어쩐지 많은 외지인들이 모여 떠들고 있는 관광지에 홀로 서있는 제주인의 어색한 어울림 같다. 

건물의 이층에는 대규모의 휴게공간을 두 군데 만들어 놓았는데 규모가 크다기보다는 작은 규모를 강제로 넓게 늘려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마치 포토샵으로 해상도가 낮은 사진을 억지로 늘렸을 때 바둑판 형의 허무한 픽셀만 보이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지역의 세계화'라든가 '지속 가능한', '글로벌 인재' 등과 같은 공허한 공무원식 표현이 떠오른다.

또한 이 건축물은 '인생은 한방이다'식의 무모한 도전정신과 상다리가 부러져야만 대접하는 이의 정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질보다 양의 미덕이 뚜렷하고 '간판 우선주의' 같은 외모지상주의의 허세가 종합적으로 응축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공간은 매우 비좁았다. 

나는 당이 떨어진 듯한 약간의 어지럼증이 왔기 때문에 달콤한 것을 먹기 위해서 2층 커피숍에 올랐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예상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커피숍 이라기보다는 행사 홀과 같은 넓은 공간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들 만이 있었다. 벽에는 어떠한 장식이나 그림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 모든 테이블 세트들은 단 한 가지의 모양뿐이었고 줄이 반듯하게 맞춰져 있었다. 그것들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뭔가 몸에 해로울 것 같이 느껴지는 합성 재질의 테이블과 유난히 광이 나는 금도금한 가벼운 의자들 이였다.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대량으로 구입한 것이 확실하다. 또는 폐업한 다른 호텔이나 회의장에서 통째로 가져왔을지도 모른다는 의문도 들었다. 나처럼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혹시 회의실이나 구내식당에 잘못 찾아 들어온 것으로 오해하여 멈칫하고는 다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초기의 인테리어 컨셉은 아녔을 것이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든다면

첫 번째는 많은 건축비 지출로 인해 인테리어 비용이 대폭 감소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예상한 것처럼 저가의 가구를 들여왔으며 벽이나 주요 장식 공간도 장식품을 구입할 비용이 바닥났으므로 더 이상의 장식을 포기하고 심플함이라는 말을 혼자서 되 뇌이면서 자기 최면에 빠지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제주도는 아직 단체 관광객이 많으므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지방의 아줌마 아저씨들이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많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들을 위한 단체 공공시설처럼 만든 것이다. 그런 뜨내기 단체손님들은 자율적으로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고 여행사의 일정에 맞춰 오는 것이므로 이곳의 분위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도 없고 그저 저렴하게 마시고 가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이 개인적으로 이곳에 다시 올 확률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단체를 상대로 하는 영업은 주인의 통 큰 한방 주의와도 잘 들어맞게 한방에 통 큰 승부를 하는 사업가로서 또는 화끈한 기개를 지닌 남자로서 동창이나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후배 사업가들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손까지 떨리려는 전조 증상이 왔으므로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주문 카운터에는 두 명의 여직원이 있었는데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그녀들의 두 손은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갔을 때 그녀들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는데 화면을 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약간 귀찮은 듯한 눈빛이 내게 닿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것을 부정하는 하는 듯했고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고 단정했다.

그녀들은 이 가게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그녀들의 손님이 아니고 주인 양반의 손님인 셈이다. 그러니 그녀들은 굳이 나를 자신들의 기다리던 친구처럼 밝게 반기거나 할 이유는 없다. 그녀들은 정직원도 아니므로 스타벅스의 아르바이트생들처럼 매장에 대한 자긍심이 풍만한 듯한 거짓 표정과 혼이 담기지 않은 말투는 더욱 할 필요도 없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그렇게 했다면 그녀는 태어나서 이런 일이 처음인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박하고 순수한 산골소녀일 것이다.

 그녀들은 당연히 자신들은 산골소녀도 아니고 도시의 세련된 여성들이며 멋을 알고 지적이며 유머를 즐길 줄 아는 현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녀들은 집안 형편이 그다지 어려운 편도 아니며 가정에서는 귀여움을 받는 딸이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다소 예쁜 여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남는 시간을 알뜰히 활용하기 위해 이곳에 잠깐 알바를 하러 온 것뿐이고 이 업무를 마치면 또다시 자신들을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 다소 바쁜 여성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점주가 원하는 친절한 접객의 개념이란 과잉을 넘어선 비굴함이며 그것은 페미니즘적 인권이 결부된 중대한 자존심의 훼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그녀들에게 내가 불친절을 지적하고 교정하기를 원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나는 그 다음날 포털사이트에 갑질 손님이라는 제목의 뉴스로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오명을 쓰는 것이 두려운 나는 지금까지 생각한 모든 것을 머리에서 지우고 아무 말 없이 주문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이곳에서 브런치만 주문하고 커피는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보온병 커피를 몰래 마실 요량이었으므로 오히려 내가 더 공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치즈케이크를 주문했고 호출벨을 손에 들고 카운터를 벗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며 쾌적한 자리를 찾아보았다. 쾌적한 자리는 많았는데 그것은 이 홀에 손님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적함은 내가 평소에 늘 바라는 상황이었다.

 바닷가가 잘 보이는 최적의 자리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마음 가는 데로 앉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자리는 건너편의 식당가와 야외 테라스도 모두 한눈에 보이는 곳이라서 마치 전망대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의 자리이다.

 파도가 치는 해변에 붙어있는 넓은 야외 테라스에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줄전구들을 공중에 많이 달아 놓았고 이곳의 정체성을 알려주듯 음악이 다소 큰 볼륨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모두 힙합이었다. 이러한 연출은 각국에서 여행 온 젊은이들의 성지가 된 포르투갈 해변의 유명카페나 홍대 클럽 같은 자유분방하고 물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의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맞아떨어지는 때는 일 년 중 휴가 성수기 때의 며칠간 외에는 없었다. 지금은 매우 조용하고 적막하다. 젊은이들은 적적하다고 느낄 것이다.

지금은 저녁시간인데도 식당가에는 두 팀의 손님들만 있었고 음식 종류별 각 코너 안에는 한 두 명의 직원들이 각각 서있다. 직원들은 손님들 보나 자신들이 더 많음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한가하게 휴대폰으로 무엇인가를 하고는 있지만 어쩐지 불편하고 집중이 안되었다. 그중에 몇 명은 아예 휴대폰을 내려놓고 먼 수평선을 다소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낚시꾼의 표정과 같았다.

모든 식당들은 외부와 오픈되어 있었으므로 가끔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식사 손님은 아니고 그곳을 통과해 가는 마을 사람이나 사진 촬영만 하는 관광객들 뿐이었다.

이런 반복되는 한가한 일상에 익숙한 직원들은 이제 이곳에서의 어떠한 기대감도 해탈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자주 보고 있는데 그것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어서 빨리 이 지루한 시간이 지나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거나 조금 더 멀리 보는 직원들은 퇴근시간을 넘어서 폐업의 날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손님이 없는 것과 그로 인하여 다가오는 주인의 눈치, 그리고 가시방석 같은 자리의 불안함 보다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무료함이 만들어 낸 무기력함이다.

 모처럼 기대하고 들어간 직장에서 자신의 일거리가 없다면 처음에는 편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과도한 편안함은 오히려 과도한 업무로 인한 피곤함 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되며 불안함을 자가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혹은 청춘을 썩히고 있다고 좌절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어떠한 험하고 힘든 일도 버티거나 감래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노동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기대감이고 또 한 가지는 그런 희망과 관계가 없었다 하더라도 스스로 사회에 필요한 인재일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예측으로 피어나는 자존감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기대나 성취감 또는 자존감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편한 일이라는 것은 그 어떠한 고되고 어려운 일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다.

젊은이들을 진정으로 괴롭히는 것은 평온과 정적이다. 

건강한 젊은이들은 나태하지 않다. 생리적으로도 그들의 왕성한 근육과 뜨거운 피는 나태함이나 한가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그들에게 나태한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일 할 수 있는 그래서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뿐이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를 지키는 것이 편한 선수는 없다. 그들은 오히려 출전 선수들 못지않은 체력을 갖추고 준비하고 있지만 정원 초과로 벤치에 있을 뿐이다.

지금 이곳의 젊은 직원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은 자신은 어디서든 필요한 존재이며 그런 모습을 타인에게 겉모습 만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자위적 몸짓이며 이런 참기 힘든 한가함을 감추고 싶어 하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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