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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Jul 15. 2020

[소설] 해변의 사투-5

5. 행복의 쟁탈 


호출벨의 진동에 놀라 카운터로 갔을 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고 곧이어 한 그룹의 여자들이 몰려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들이 가게에 들어왔다. 한 묶음이었던 소리들은 각각의 낭랑한 고음의 목소리로 나누어져 들렸고 그런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합쳐진 함성 같은 재잘거림의 진동은 이 조용한 가게를 뒤 흔들어 놓았다.

상기된 나의 뒷 목에서 땀이 솟아 나왔다.

주문했던 케이크를 받아 들고 내 자리로 왔는데 그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불행이 앉아있었다. 그녀들이 내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40대 후반의 이 여자들은 윤기 나는 머리카락과 광택이 있는 피부와 얼굴 그리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착용한 액세서리들은 그런 단정한 옷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것들에게 서는 은근히 튀어 보이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주로 핸드백과 구두, 스카프 그리고 반지나 목걸이 같은 귀금속이었고 차 열쇠도 있었다.

그녀들은 서로에게 '영희 선생님', 혹은 '숙희 선배' 같은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고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게는 이름을 불렀다. 이런 호칭처럼 그녀들은 매우 친숙해 보이면서도 그녀들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와 높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런 적당한 온도의 거리를 깨거나 깨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밝고 단정했다.

그녀들이 대화를 하는 방식 또한 그랬는데 그것은 한 사람이 말을 할 때 특정한 누군가를 향해 말하지 않고 그룹 전체에 대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한 사람의 개인적 답변 이라기보다는 모두의 공통된 의견 같은 뉘앙스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의 암묵적인 우호적 예의는 다소 경직된 대화라고 상상할 수 있는데 실은 그와는 반대로 매우 쾌활하고 시끄러울 정도로 경쾌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경쾌함의 근원은 웃음이다. 이들은 어떤 말이건 웃음으로 끝났고 그렇게 끝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야말로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과거에 어떤 직업적으로 같은 소속의 동료들 이였던 것 같은데 그때의 멤버들이 지금까지 그 친목을 유지하여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에 대한 기억도 멀어졌을 뿐 아니라 그동안 삶은 변화가 다양했으므로 그때의 전문적인 대화보다는 일사의 일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개는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로 남편에 대한 이야기나 자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것도 많았다.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자신들의 또는 지인들의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다. 주로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것이었다.

대화의 한 가지 특징이라면 자신과 그 그룹에 관계되지 않은 제3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반드시 그 끝은 뒷담화 처럼 결론이 나곤 했다. 그리고는 모두 요란한 웃음으로 주제에 대한 결말을 맺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요란한 웃음이 매우 거슬렸지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부터는 그 웃음이 그다지 거슬리지 않게 되었을뿐더러 어떤 대화에 대한 것은 궁금증도 생기기도 했고 그것을 물어보고 싶은 충동까지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유형이 있는데 대개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실수담 같은 것으로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하여 벌어진 일들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그런데 그 실수란 것은 예를 들어 어려운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어둡거나 심각하거나 혹은 음흉한 종류의 것은 없고 즐겁고 밝은 생활 속에서 발생한 코믹 홈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실수로 자신의 바보 같은 실수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어쩐지 자신의 그런 귀엽고 예쁘기까지 한 행동을 실수란 표현으로 돌려 말하는 듯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김없이 요란한 웃음을 쏟아낸다.

두 번째는 보고 형식으로 이어나가는 직접적인 자랑 이야기로 자신 혹은 가족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나 가족이 사놓은 부동산이 잘 팔려서 생각지 않게 이득이 생겼다든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친척이나 남편에게 받은 값비싼 선물 이야기, 자녀에게 생긴 자랑스러운 사건, 차를 바꾼 일...

그러나 이들은 이런 좋은 사건들을 직접적이고 상세하게 전개하지는 않는다. 그저 툭 하고 던지는 식이다. 마치 그런 일은 그다지 큰 사건도 아니라는 듯 절재하여 이야기한다. 만약 자신이 그러한 행복을 유난히 목놓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일은 자신에게는 기적 같은 사건이며 그렇다는 것은 결국 자신은 평소에는 불행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다한 자랑은 그만큼 후에 자신에게 뒷담화로 돌아올 수도 있는 부담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좋은 사건은 자주 일어나고 있는 평이한 것이라고 순화하여 말을 함으로써 훗날 되돌아 올 화살을 애초에 차단하는 현명한 대화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랑거리를 말로만 증명하기에는 어딘지 불신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사진이나 그것을 증거 할 수 있는 물건을 제시함으로써 좀 더 부드럽고 명확한 전개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 이런 주제에 대한 마지막은 웃음보다는 탄성이나 애교 섞인 부러움의 질타 같은 것으로 끝난다.

"와 좋겠다!", "어머 잘됐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들의 부러운 웃음을 보내는 밝은 표정 속에는 "그동안은 불행했지만 이제 오랜만에 행복해져서 좋겠다"라는 가슴속 심연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축하의 말도 중첩되어 있었다. 

'행복은 나눌수록 부풀고 불행은 나눌수록 희석된다'라는 속담은 이 여자들 그룹의 목적이며 신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잘 맞아 들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양지의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양지의 공식으로는 맞아떨어질 수 없는 지하세계의 법칙이 거대한 빙산처럼 바닷속의 심연을 떠다니기 때문에 어느 날 서로 기원이 다른 공식들이 부딪쳤을 때는 거대한 마찰음과 함께 일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은 만약 그녀들의 이 적당한 거리가 유지하지 못하고 가까워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일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내면 혹은 서로의 관계에 대한 충돌이다. 어린이 동화처럼 밝음에 대한 반응은 반드시 모두의 기쁨이어야 한다고 하는 상식적인 접근은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진한 최면적 믿음을 언제까지 자신의 내면에 은근슬쩍 미루고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물질의 얻음과 그에 대한 상식적인 접근으로써의 행복 스토리는 모두에게 잔잔한 물결처럼 부드럽게 퍼져 나갈 수도 있지만 그 물결이 과하여 잔잔함의 파동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그것은 파도가 되어 개인의 뚝에 부딪치고 그 뚝을 부서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뚝에 있던 물은 파도에 합류되고 흩어져 없어진다. 약한 뚝 일수로 행복스토리의 잔 파도에도 쉽게 무너진다.

나는 그녀들의 대화를 몰래 엿보기도 하고 들으면서 이런 가정을 은유해 보았다. 

행복을 나누는 화목한 테이블에는 각자 내놓은 행복들이 모여있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부풀려 볼까 하는 사람들이 모여 배팅하려고 내놓은 판돈이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강한 행복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그 판돈을 모두 거두어 간다.

돈을 잃은 사람들은 양지의 상식으로 승리자를 부러워해 주거나 축하해 주고 승리자는 그것에 고마워한다. 그러나 돈을 잃은 사람들은 돌아갈 차비가 없으므로 승리자는 아량을 베풀어 자신이 딴 돈의 아주 일부를 나누어 준다. 그것은 기부이다. 모두들 감동한다. 그것은 경제학에서 배웠던 자본주의와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행복은 나눌수록 한 사람만 비대해졌고 나머지는 점점 말라갔다. 행복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제 또 다른 행복의 판돈을 준비해야 한다. 언젠가는 잃었던 자신의 행복을 되찾고 더불어 다른 이들의 행복을 싹쓸이하는 행복한 꿈을 내려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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