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우 Oct 01. 2020

언어 음향과 Fernando Pessoa

가을저녁의 기도

https://youtu.be/wx_BbSY6WdQ

음악 : 김광진 - 편지

연주 : 전제덕 (하모니카)

시 : Fernando Pessoa -PRECE(기도)

시낭송 : Maria Betânia

영상 : 중디

장소 : 애월읍



시대와 문화, 그리고 방향이 전혀 달라도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가. 

전혀 다른 여러 개의 차원이 교접하는 어떤 한 점은 있다. 다만 그 하나의 점을 상상하지 않거나 충돌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상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음악은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김광진'의 '편지'이고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의 연주이다.

시는 포르투갈의 국민적인 시인 'Fernando Pessoa(페르난도 페소아)'의 'PRECE(기도)'이고

시 낭송은 브라질의 '마리아 베싸니아(Maria Betânia)"가 했다. 그녀의 어떤 노래 이상으로 아름다운 음률이 느껴진다.

모국어란 그것이 몸을 이루는 단백질처럼 체내에 고착된 언어이다. 그러나 외국어는 그 의미는 알 수 있어도 쉽게 소화되어 자아의 단백질이 되기는 힘들다. 그것은 단지 가사가 없는 인스트루먼트 음악처럼 청각의 감각적 음향일 뿐이다. 그런 음향신호는 자신의 신체 체계에 맞게 추출하고 재생산하여 오직 개인적이며 자신만이 소화할 수 있는 전 혀 다른 새로운 언어 음향이 된다.  

우리들이 해석을 넘어서 그 정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3세계 노래들을 들을 때 우리는 단지 그 멜로디뿐 아니라 알 수 없는 그 노랫말 조차 효과음향처럼 음악의 일부분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성의 경험을 버무려서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듣는 것과 같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돌출되지 않았던 또 다른 자신의 내면을 찾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물론 음악에 따라 다른 경우가 있겠지만 그다지 소화시키지도 못할 원어 가사의 의미를 찾아내서 어떤 정체성도 없는 공중누각처럼 날려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자신의 추억의 정체성으로 만들어 간직 해온 어떤 음악의 가사의 뜻을 찾아보고 의외로 그 다름에 실망하여 차라리 그 뜻을 찾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곡들이 많을 것이다.

주관적인 시각처럼 주관적인 청각의 경험과 추억은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소중한 정체성이며 존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구성체의 근간이다.


Fernando Pessoa(페르난도 페소아 1888 포르투갈 리스본~1935)

페르난도 페소아는 본국 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국민적인 시인으로 유명하다. 평생 외톨이와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그였기에 그것은 물론 그가 죽은 후의 일이었고 후에 유럽의 문화적 지방도시 같았던 포르투갈을 모던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인물로서 포르투갈 지폐의 인물로도 사용되었다. 마치 카보베르데의 세자리아 에보라 같은 존재랄까?

그는 일반 독자들보다 시인들이 첫사랑처럼 갈망하고 사랑하는 시인이다. 그는 생전에 포르투갈어로 출판된 시집이 단 한 권뿐이었는데 그가 죽고 나서 그의 방에서는 출판되지 않은 2000~3000천 편의 작품이 원고지째로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출판된 그의 책들은 본인이 아닌 후세 출판일들에 의해서 묶여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는 특별히 문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평생 수많은 글을 써왔는데 그는 스스로 시인으로 불리길 원했다.

그는 독특한 작품처럼 그는 많은 이명(異名)으로 활동한 작가인데 무려 70~120개의 이명으로 글을 쓰고 발표해 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그의 시를 보면 조금 알 수 있다.


- - -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페르난도 페소아/1935년)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산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낄 때면,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누군지.

나는 그저 느끼거나 생각하는

하나의 장소.

나에게는 하나 이상의 영혼이 있다.

나 자신보다 많은 나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존재한다

모든 것에 무심한 채.

그들이 입 다물게 해 놓고, 말은 내가 한다.

내가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

엇갈리는 충동들이

나라는 사람 안에서 다툰다.

나는 그들을 무시한다. 내가 아는 나에게 그들은

아무것도 불러 주지 않지만, 나는 쓴다.


- - - 


이처럼 그는 자신 안에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수십 개의 다른 이름으로 된 작품들은 각기 고유의 주관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다른 이름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거나 부정하거나 통합하는 각각의 유기체 같은 인격체들과 같았다. 또한 그는 주관적이고 고유한 지식을 부정했다.

"그들은 내 안을 지나간다. 그들은 내 생각들이 아니라, 내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작품들은 페르난도 페소아 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며 각 작품마다의 다른 이름의 작가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한 곳에 안주하여 우물을 파기보다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무게감도 깊이감도 찾을 수 없는 늘 여기저기 낯선 곳에서 우리를 깨닫게 한다.


- - - 


포르투풍 내장요리

어느 날 식당에서 시공간 바깥에서 나에게 

사랑을 식은 내장 요리처럼 가져다주었다.

나는 주방장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나는 데워서 주는 편을 선호한다고,

내장 요리는 절대 차게 먹지 않는다고

그것이 사람들 심기를 건드렸다.

맞는 말도 못 꺼내다니, 식당에서조차도.

나는 그것을 먹지도 않았고,

다른 것을 주문하지도 않았고,

계산을 치른 다음 산책이나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알까?

의미는 모르지만 나에게 있었던 일.

나는 이것을 두고두고 떠올리게 되었다.

왜 나는 사랑을 주문했는데, 어째서 식은 내장 요리를 주는 것인가.

차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 어째서 차게 가져다주었는가.

절대 차게 먹는 것이 아닌데도 차게 나왔었다고.

너무 차가웠다고.


- - - 


체스를 두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에, 페르시아가 이름 모를 어느 전쟁을 치를 때,

도시 안은 외적의 침입으로 들끓고,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두 명의 기사들이 체스를 두고 있었다

부질없이 무심하게 체스경기는 계속되었다.

(후략...)


- - - 


신들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내가 신들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삶은 바람처럼 자유로울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없는 자유

아무것도 없는 공기 중에.

증오와 사랑은 똑같이 우리를 찾는다 

그리고 둘 다 자기 식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신이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 자에게

바로 그에게 자유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공포의 날. 무엇이 공포인지를 확인하는 공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