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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Oct 09. 2020

시인은

문화예술계에는 여러 직업이 있다.  화가, 작곡가, 무용가, 연출가, 소설가, 극작가... 이들은 각기 자신의 일에 대한 호칭으로 각 장르의 명사 뒤에 그것들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家)가 붙어있다.

그런데 시를 쓰는 사람은 시가(詩家)라고 하지 않고 시인(詩人)이라 한다. 어째서 시를 쓰는 사람만을 유독 사람인을 붙이는가. 


모두들 인간들을 위해 감동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에도 시를 만들어내는 사람 만이 인이라니... 아마 시를 만드는 행위는  직업으로서 어울리지 않으며 어울려서도 안된다는 사람들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모든 작가들을 직업으로서의 위치를 인정하지만 시인 만은 최후까지 직업이 아니길, 직업으로서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를 통해 자신의 순수함을 끝내 지키고 싶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연인도 사람인을 쓴다. 연애는 직업이 아니다. 만약 연애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범죄자이다.

다른 분야의 직업군에서도 이와 같은 것이 통하고 있는데 장인, 종교인, 달인, 연예인, 게다가 범인도 있다. 범인 역시 범죄자와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 역시 직업과는 관계없이 범죄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약간 존경스러운 직업으로서의 ‘가’, 존경스럽진 않고 그냥 인정하는 ‘자’, 그리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열정을 인정하는 ‘꾼’ 그리고 최하위의 ‘놈’이 있지만 ‘인’은 그가 하는 일이 존경과는 별개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우리에게는 존재 자체가 마음의 안식처 같은 것이며 그런 마음들이 인정하는 것이 인간이지 직업은 아니다.


시인이라는 느낌의 조건 중에는 그는 부자라든가 지나치게 가볍고 명랑하다든가 늘 바쁘다든가 너무 차갑다든가... 시인이라면 이런 것과 거리가 멀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반대의 것들이라야 어울린다는 믿고 싶어 진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연인에게 바라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이처럼 시인은 연인처럼 마지막까지 늘 그렇게 있어주기를 바라는 정신적 대상이다. 직업으로서의 연인이 없는 것처럼 직업으로서의 시인이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는 허위이다. 시’인’은 다른 ‘가’들과 분명히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모든 ‘가’들은 창작에 있어서 마감시간이라는 틀에 제약을 받지만 시인에게 만은 그런 마감시간이란 틀은 없다.


시인은 독자의 연인으로 남아 있을 때 시인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 혹은 ‘자’까지 되겠지. 

최소한 시인이 바쁘다는 것은 참기 힘들다.


https://youtu.be/yi_GA0Lkz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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