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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Nov 15. 2020

청춘의 메모

청춘의 메모 


꿈속에서 나는 옛날 집에 가있었다.

옛날에 살던 집 이층 나의 방에는 아직 희미한 형광등이 깜박이고 있었고  그 불빛에 책장과 책상 위에는 정돈되지 않은 물건들이 마치 방금 나갔다 들어온 듯 널브러져 있었다.

먼지 쌓인 앨범들을 책장에서 꺼내면서 작은 인형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현실적인 사운드 때문에 잠시 꿈이라는 것을 잊을 뻔하였다. 그러나 앨범 사진들 속의 어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꿈 속이라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문득 앨범 커버 안에 여러 개의  낡은 쪽지를 발견하였다. 당시 메모해 놓은 글들과 그림들이었는데 어쩐지 낯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필체가 어설픈 글자들이 적힌 메모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보면서 점점 흥분되기 시작하였다.


그 쪽지의 내용들은  당시에는 단순한 일기 같은 것이었다. 나의 심정, 친구들과의 관계, 그녀에 대한 것 등 그러나 그보다 당시 내가 삶에 대해 발견했던 것들의 글들과 음악이나 미술 등에서 발견했던 것들이었는데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그것은 성인이 된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도 없었던 도전적이고 색다른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아주 중요한 나의 연결점들이며  미래에의, 위기를 풀 수 있는 열쇠 같은 빛나는 직감 같은 것이 수없이 많은 쪽지로 남아있었다. 그것들은 오히려 지금 나의 미래를 풀 수 있는 단서이기도 했다. 

점점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꿈이 깨기 전에 그 모든 것을 모두 챙겨 나오려고 다시 서둘러 뛰어 들어갔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쪽지를 놔두고 몸만 겨우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분명히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을 어떻게 다시 두고 나온단 말인가.

이미 아침해가 밝아오고 있었지만 그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꿈의 그 자리로 몇 번이고 뛰어들어갔다. 놀랍게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아무리 그것들을 잘 챙기고 또 챙겨도 꿈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떨어뜨리거나 어이없게도 잊고서는 자꾸 맨몸만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몇 번인가 시도한 끝에는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는 길 조차도 자꾸만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나마 갖고 나온 몇 장의 메모조차도 이해할 수 없게도 손에서 하나 둘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간절함이 반복된 노력으로도 할 수 없게 되자 그 아쉬움과 허탈함에 나의 가느다란 다리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머리는 혼돈스러웠다.


더 이상 꿈속으로 돌아갈 수 없이 날이 밝아지자 이제는 가져올 수 없어서 눈으로 기억해 두었던 그 메모의 어렴풋한 내용조차 머릿속에서 점점 지워져 가기 시작했다.

창밖에 청명한 하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쪽지가 왜, 어떻게, 어디에 중요한 것이었는지 조차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과거로 타임 슬릭을 했더라도  운명은 변형할 수 없다는 절대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그 쪽지들은 결국 어떤 방법으로도 현재의 시간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다만 어렴풋하게 그것들이 빛나고 소중한 나의 청춘의 빛나는 꿈이었다는 것만이 아련한 향수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메모들이 더 이상 기억에서 사라졌을 때 나의 청춘도 종료되었다.


https://youtu.be/ovrA7jxmW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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