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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 Apr 01. 2020

그들도 눈물을 흘린다

#첫 눈물

초등학교 2학년, 나에게는 두 분의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1학기 때의 담임선생님은 그해 정년퇴임을 맞이한 노스승이셨고, 2학기 때 선생님은 그해 첫 담임을 맡게 된 젊은 선생님이셨다.


고작 2년차 학생이었지만 담임선생님이 중간에 바뀐다는 것은 꽤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하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담임선생님은 1년동안 같았는데. 게다가 원래의 담임선생님은 무섭기로 유명하셨지만, 떠나시는 길에 학급 문집도 자필로 서론을 써가시며 정성스레 만들어주시기도 하시는 등 인자한 면도 많으신 분이었다. 그리하여 2학기를 맞아 새 담임선생님이 오셨을 때 내 친구들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좋다는 쪽은, 젊고 친절해보이는 여선생님이니 이전 선생님보단 더 부드럽고 따스할거라는 주장이었다.

나쁘다는 쪽은, 그래도 원래 담임선생님이 바뀌었으니 다시 적응하기 오히려 귀찮다는 측이었다.


처음에는 후자가 맞는 듯 싶었다. 첫시간부터 선생님은 아이들의 기대와 다르게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상당히 앳된 외모를 하고 계셨던 선생님은 그 성함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놀림을 살짝 받기도 했다. 성함을 칠판에 쓰고나서 한 남자아이가 그 이름을 갖고 놀리자 검지를 입술에 대고 정색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은 따뜻한 모습을 곧잘 보이곤 하셨다. 그땐 알 수 없었지만, 선생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항상 애정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숲속에 조용히 담겨있는 연못처럼, 선생님의 작은 미소는 조용히 빛났고, 아이들을 칭찬하는 목소리는 티없이 맑았다. (실제로 선생님 목소리는 라디오에 어울릴 정도로 좋았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긴장을 점점 안하게 됐다. 혼낼 때마다 굳어지는 선생님의 표정은 웬만하면 안 보는게 좋았지만, 아이들의 교실에서 수다와 장난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맘때쯤 나는 거의 교실의 훌리건 수준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건 역시 떠드는 일이었다. 아직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의 세례를 받지 못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초 4때 입문), 하여간 말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만큼 학교를 다니게 하는 원동력은 없는 듯 했다. 교실 위를 정신없이 날라다니는 종이비행기와 딱총알처럼 정신없게도 떠들고 떠들던 그 시간.


특히나, 그날 그때의 난 고삐 풀린 망아지 그 자체였다.


선생님께서는 수차례 조용히하라고 경고를 하셨다. 누구누구에게 마이너스 포인트를 주며 칠판에 가로획을 긋는 일도 지치신 듯 보였다.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아이들은 잠시 입을 다물다, 또다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쯤되면 다들 머리 위로 손을 올리라고 시킬 법도 한데 -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떠들었다.


지칠 줄 모르는 떠듦 끝에 어느 순간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선생님이 너무나 화가 나서 이를 꾹 다물고 참고 계시는 줄 알았다. 한 5초 후면 이제 거대한 폭풍이 몰아닥치겠구나. 이제 끝이구나. 모든 아이들이 갑작스레 소리를 죽이는 그 순간, 나는 모두가 똑같은 공포심에 몸을 사리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야 선생님 우신다...'



한 아이의 말에 나는 교실 한 쪽의 선생님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웬일.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거나,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게 아니라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작은 안경을 들어올리고 선생님은 눈물을 손으로 닦더니, 이내 자리에 앉아 화장지를 뽑았다.


말없이 흘리는 그 눈물을 보면서

나는 선생님이 화날 때보다도 훨씬더 불안했다.

내가 생각해봐도 제일 크게 떠들었는데, 그 미안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놀라움도 역시 말로 꺼낼 순 없었다.


난 그때, 어른도 울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선생님의 나이는 그때쯤 고작 이십대 중후반. 그러나 내게는 어엿한 어른. 기억을 돌이켜봐도 집에서나 학교 다른 곳에서나 어른이 우는 것은 본 적이 없는 내게,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그리고 '어른'이라는 존재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른은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화를 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들에겐 눈물이란 없다. 운다는 것은 아이들이나 하는 일일테니까. 어른이 된다는건 눈물을 참게 되는건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른도 눈물을 흘린다. 더 잘 참을 순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탓에 더욱 소리없이 슬프게 흘릴 수 있는게 어른의 눈물이었다.


어쩌면 은퇴하신 노선생님도 그렇게 울던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부모님도 눈물을 흘리실지도 모른다. 눈물이란건 아프다고 슬프다고 바로 터뜨리는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참고 있다가 감당하지 못하여 떨구는 방울들일 수도 있음을 난 그때 처음 '보았다'.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게 아니라 숨기고 있는 것이구나.


선생님은 그때 수업이 끝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참으로 당혹스러웠던 그 눈물은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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