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다
고3 시절, 친구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과도한 조명으로 눈코입 경계마저 흐려진
현실감 떨어지는 프로필 사진이었다.
소개받은 친구인데 잘 안될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친구에게 사진을 받아 들었다.
“와… 너 잘 안될 거 같으면 내가 소개받자”
가벼운 농담이었다.
“그럴래?”
“응? 진짜? 괜찮아?”
친구는 주선자인 듯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대화가 오고 가는 듯했다.
“좋대”
뭔가 일이 풀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낌이 좋았다.
간단한 대화 몇 마디로 소개팅은 성사되었다.
피아노를 치던 친구였다.
크지 않은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귀를 간지럽히는 애교 섞인 목소리는
금세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이 잘 풀린다는 게 이런 거였다.
그쪽도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조명만 가득했던 프로필 사진을 받아
지갑 사이에 껴 넣었다.
집도 가까웠다.
이건 운명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도서관을 핑계로
심부름을 핑계로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
아파트 단지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영원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조바심이 났다.
수업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지나가고
쉬는 시간 10분은 사치였다.
그래도 입가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녀가 보고 싶을 땐 지갑 속 사진을 꺼내 보았다.
“뭐야. 뭘 보고 그렇게 좋아해?”
“어~여자친구”
“오~~ 나도 보여줘”
그렇게 호기심 많던 친구에게 사진을 건넸다.
“어? 얘 내 친구 여자친군데?”
그것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