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물건을 아꼈다.
97년형 아반떼도 그중 하나였다.
스스로를 정비하듯
시도 때도 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했다.
어느덧 10년을 바라보는 아반떼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빠, 오늘 차 좀 쓸게요.”
여느 아들처럼 낮은 저음으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주차장 조명에 기대 차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차 내부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강박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닦아낸 플라스틱 대시보드는 윤기가 흘렀다.
먼지 한 톨 없는 공간에는 아버지의 고집만 묻어 있었다.
딱딱한 스티어링휠은 그날따라 가벼웠다.
기억도 나지 않는 라디오 음악에 맞춰 지휘하듯 손끝을 휘저으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덜컥—“
차문을 열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여기야!”
“어? 오빠 일찍 왔네요.”
“방금 왔어. 여기 타.”
“와. 오빠 차도 있어요?”
허세 가득한 대학생으로 보지 않을까.
차에 올라탄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 둘러본다.
“와, 차 되게 깨끗하다.”
“아이, 뭘. 좀 지저분하지?”
시력이 2.5 정도는 돼야 흩날리는 먼지 하나 정도 볼 수 있을 내부였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날렸다.
2년 2개월의 세월 동안 2.5톤 트럭을 몰던
제1야전수송교육단 운전병 조교에게 아반떼는 작고
소중한 장난감차였다.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핸들링에 조수석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우와. 오빠 뭐예요. 운전 왜 이렇게 잘해요?”
“아 조교였어. 운전병 조교”
“아 그런 것도 있어요? 신기하다”
군생활이 쓸모 있게 느껴지는 순간이라니.
역시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였다.
좁은 골목, 차선 변경, 평행주차, 후진주차.
나와 아반떼의 합작품을 쏟아내며
덜덜거리는 엔진소리와 함께 시내를 누볐다.
차가 떨리는 건지, 내가 떨리는 건지 몰라 자꾸 안전벨트를 매만졌다.
찬바람이 코를 간지럽히던 겨울 어느 날,
조수석부터 날아온 꽃향기가 닿자 코끝이 따뜻해졌다.
방향제도 없던 차 안은 그렇게 꽃향기로 가득했다.
“조심히 들어가”
“네. 오빠 오늘 즐거웠어요”
“그래 다음에 또 드라이브하자”
훗날 그녀는 회상했다.
“오빠 그때 되게 오래된 차 타고 다녔는데, 자신감 있어서 좋아 보였어.”
그때서야 알았다.
97년형 아반떼 운전석에는 용기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