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넌 말이 없었다

by 연쇄상담마

막무가내 같은 자리였다.

그녀에겐 밥약속, 나에게는 데이트신청이었다.

각자의 집 중간쯤, 종로가 좋겠다고 했다.


평점도 리뷰도 없는 세상.

마냥 걷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뭐 먹을까?”

“저 아무거나 잘 먹어요.”

교과서 같은 답도 마음에 들었다.

까다로운 입맛이라 한들 상관없었다.


‘왼손은 거들뿐.’

《슬램덩크》의 명대사처럼,

그날의 메뉴는 우리의 만남을 거들 뿐이었다.


마냥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근사해 보이는 간판을 흘겨보듯 지나쳤다.


학회실 소파나 뒹구르던 오빠의 뻔한 유머에도

캐비넷 앞에서 전해지던 똑같은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 계속 걸었다.


근사한 간판은 스무 곳쯤 지난 것 같았지만

지금 걷는 길이 제일 근사했다.


“저기 어때?”

“네 오빠 좋아요.”


”몇 분이세요?”

“2명이요.”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복사 붙여넣기한 듯

똑같은 술집, 직원들의 단골 대사 속에서

나만 혼자 새로운 장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눅눅해진 뻥튀기와

교과서 같은 안주로 꽉 찬 메뉴판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받은 알바비로 두둑해진 지갑엔

풋풋한 자신감이 들어있었다.


“술 괜찮아?”

“네 오빠, 소주 말고 좀 약한 거면 다 괜찮아요.”


알코올 쓴맛은 사라져 달콤해졌고,

목젖을 타고 넘은 시원한 술은

이내 뜨거워져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 잔, 두 잔.

부딪히는 잔마다 종소리가 났다.


그곳은, 근사한 종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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