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넌 말이 없었다

by 연쇄상담마

우리의 연애는

아이의 소꿉놀이와

어른의 여유가 뒤섞인 덩어리 찰흙이었다.


물레 위 찰흙은 만지는 대로 모양이 나왔다.

어느 그릇은 못 쓰게 되었고,

어느 그릇은 아름답기도 했다.


실수로 떨어져 조각나기도 했고,

스스로 깨뜨려 버리기도 했다.


“걔 연락 자꾸 받는 거 좀 불편해”

“그냥 아는 친군데 뭐 어때?”

“남자 놈들이 연락하는 게 다 뻔하지”

“오빠 나 지금 의심해?”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그놈을 못 믿는다고”

“됐어 그만 얘기해”


과거의 사건들은

불안의 씨앗이 되어

마음속 보초병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서로에게 의심의 암구호를 요청했다.


아무리 정성을 담아봐도

그릇은 금세 식어 차가운 입김만 남았다.

마음을 쏟아도, 그 안은 끝내 고요했다.


누군가는 꿀을 가득 담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술을 담아 유혹했다.


우리의 그릇은 차고 넘치고

다시 비워지고 깨지기도 했다.

그렇게 수없이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이며

흩어진 조각들을 주워 담아 매만졌다.


온도만 가득 담긴,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하염없이 쏟아부으며


[오히려 너와 나는 채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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