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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근 변호사 Jul 15. 2022

결핍

결핍     



달빛만 비추어도 춤을 추는 삐에로가 부끄러웠다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를 숨겨야만 하는 계절

마음은 자꾸 쓰라린다

태양이 히죽거리며 욕정을 쏟아내는 여름에도

온몸을 휘감는 검은 옷을 입고 전신으로 땀을 흘렸다     


나는 수천 개의 눈을 달고 태어났다

어쩔 줄 몰라 꺼이꺼이 울며 온몸으로 눈물을 쏟아내곤 하였다  

퀴퀴한 몸 냄새와 섞인 부끄러움이 얼룩무늬처럼 커졌다     


그녀는 나의 결핍이었다

경직된 얼굴은 술을 몇 잔 마신 뒤에나 사라졌고

그녀는 사랑한다는 혼잣말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 말은 나만 알아듣는다

좀 더 이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벗은 몸을 본 까닭은

하얀 살결에 새겨진 얼룩무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줄을 차고서도 종종걸음을 내딛는 개처럼,

그녀는 점박이 무늬를 드러낸 채 벌거벗고 걸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생명줄을 쥔 사람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 그것도 나를 만나기 전에 ……     


나는 수천 개의 눈을 가진 몸으로 그녀를

꼭 안아주지 못했다

온몸으로 울면서 그녀의 얼룩무늬를 어루만져주지 않았다

나는 나를 위해서 몇 개의 눈으로만 조용히 울었다

얼룩무늬를 수놓은 털이 속눈썹인 줄 알았던 그녀는

자기를 위해 울어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몇 걸음 뒤에서 눈을 감은 채 땀만 뻘뻘 흘렸다      


나보다 먼저 바람처럼 흘러가는 시간은

내게서 젊음을 조금씩 빼앗아 갔다

건조해진 눈을 비비기 위해 벌거벗고 땅을 뒹굴다가

몇 개의 눈들은 실핏줄이 터져 버렸다

밤톨 떨어지듯 하나씩 떨어지는 안구들을 보며

슬퍼하기보다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얼룩무늬를 부끄러워하다가 시간을 앞서 가지 못하고

얼룩무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녀도 안아주지 못했다

수천 개의 눈망울은, 이글거리는 태양의 욕망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더운 밤, 개처럼 길게 혀를 내빼고 혼자 헐떡거렸다

몇 개의 눈으로만 울어도 괜찮았을걸

나머지 눈으로 그녀의 구석구석을 살펴도 좋았을걸      


나는 그녀가 마음으로 통곡하지 않았으면 한다

슬픔을 모르는 아이처럼 씩씩했으면 한다

거죽이 볼품없는 수천 개의 눈망울로

나만 울었으면 한다



2022. 7. 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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