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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근 변호사 Jul 17. 2022

장마

장마     



기다리면서, 기다리지 않았다

반드시 올 사람만 기다렸기 때문이다

장마가 곧 시작될 나날에

우리는 비가 오는 날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비는 쏟아졌다     


예년과 다르게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말로만 듣던 구름 위에 산다는 거인이

번개와 함께 실루엣을 드러냈다

거인의 구토로 한강은 노랗게 변했고

새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도 우리가 만난다면

그곳은 반포대교 한가운데쯤일 것이다

자정이 넘어 혼자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당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혼자였다고 사랑이 거짓이었을까

계속 기다리지 못한 것이 거짓의 증표였을까      


혹여 당신이, 마포대교에서 기다린다면

당신 역시 나처럼 혼자 마음일지 염려할까

우리의 만남이

비슷한 마음으로 어긋나기를,

참 다행이다,

말하면서 다시 기약할 수 있기를     


새벽녘, 비는 그치지 않는다

연기처럼 밝아지는 세상을 향해

태양이 아스파라거스한 햇살을 보낸다

거인이 다시 구름 위에 눕는 시간이다

꿉꿉한 이불에 누워 잠을 자는 시간까지

아삭아삭 야채를 씹어먹으면서

아직 비가 오는 날이라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달려오면

울지 않겠다고 혼자 중얼거린다

뽀송한 꿈을 꾸며

반드시 올 사람을 기다린다     



2022. 7. 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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