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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근 변호사 Jul 23. 2019

저작권과 소유권, 그래피티(Graffiti)

이번 글은 저작권과 소유권의 충돌문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민법 제211조는 “소유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소유물을 사용, 수익, 처분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유권 자체도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하며, 각종 공법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소유권이 공법이 아닌 사법인 저작권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저작권이 소유권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유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경우, 그 유체물에 고정된 저작물의 저작권까지 취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A(발신자)가 B(수신자)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을 경우, 편지라는 유체물의 소유권은 B에게 있지만 어문저작물인 편지의 저작권은 여전히 A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B가 자신이 편지를 썼다고 하면서 편지를 공표한 경우에는 A의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이 되고, B가 A의 허락 없이 편지의 내용을 수정하게 되면 A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 것이 됩니다. 또한 B가 A의 허락 없이 편지를 출판하거나 배포하게 되면 A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것이 됩니다.



서울지방법원 1995. 6. 23. 선고 94카합9230 판결(이휘소 사건)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라 함은 문학, 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을 말하는바, 단순한 문안 인사나 사실의 통지에 불과한 편지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지만, 학자·예술가가 학문상의 의견이나 예술적 견해를 쓴 편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서술하면서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편지도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며, 편지 자체의 소유권은 수신인에게 있지만 편지의 저작권은 통상 편지를 쓴 발신인에게 남아 있게 된다고 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저작권은 소유권과는 별개의 무체재산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률의 규정 또는 계약에 의해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에 관해서는 별도의 법률의 규정이나 저작권 계약을 체결해야 저작권 분쟁이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저작권과 소유권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합니다. A가 B가 그린 회화를 구입한 후, 그림 자체를 불에 태우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림 자체의 소유권은 A가 가지고 있지만, 회화의 저작권은 여전히 B에게 있습니다. A는 그림이라는 유체물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A는 유체물의 소유권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A가 B의 그림을 태우는 것이 B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될까요?


또한 누군가 유명한 벽화가 그려진 낡은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했는데,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면서 벽화를 지운다면, 이 경우 벽화의 저작권자가 소유자를 상대로 리모델링 금지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피티(Graffiti) 아티스트로 유명한 뱅크시(Banksy)가 타인의 건물에 남긴 작품은 어떻게 될까요? 얼마 전 뱅크시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되었습니다. 경매에 첫 번째 작품은 2007년 12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있는 한 건물에서 발견된 것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분리 장벽을 건너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당나귀를 이스라엘군이 검문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신랄한 조롱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당나귀 서류’(Donkey Documents)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출품작은 2010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버려진 한 공장에 그려진 것으로, 한 흑인 소년이 손에 페인트통과 붓을 들고 있고 그 옆에는 ‘난 여기 모든 것이 나무였을 때를 기억한다’(I Remember When All This Was Trees)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만약 이 경우 건물이나 공장의 주인이 벽을 보수한다고 다시 페인트칠을 하거나 벽을 철거한다면 뱅크시의 저작권을 침해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저작권과 소유권의 첨예한 대립을 일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심도 있게 연구하는 학자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민법학자는 소유권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고, 저작권 학자는 그 반대로 저작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저작권과 소유권의 충돌 사례에 관한 판례는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향후 이러한 사례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법무법인 조율 정동근 변호사

지식재산권법 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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