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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산 Feb 08. 2020

그해 여름, 소년의 구레나룻

 소년의 지난 2년은 어땠을까. 일단 그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의정부와 캘리포니아의 거리만큼 동떨어진 세계였다. 물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나이 때의 남자애들이 대개 그렇듯, 이성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생겼다. 소년은 때때로 태평양 건너에서 까르르거리고 있는 여자애들을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여자 친구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이라기 보단 관심의 수준이었을 뿐, 소년의 진정한 욕망은 오로지 게임으로 수렴했다. 오직 게임 만이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소년의 모든 욕망을 끓어오르게 했다. 그 시기 게임에 빠진 친구들은 용모가 비슷했다. 깃발처럼 펄럭거리는 교복 바지와 아빠 정장을 입은 듯한 어정쩡한 상의 재킷. 사실 이것은 핏(fit)이란 관점에선, 옷을 입었다기보다 몸에 올려놓았다고 보는 게 적절했다. 머리 모양 역시 근대 포드주의의 승리를 증명하는 듯, 대량생산된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구레나룻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점이 중요하다) 펄럭바지들은 그들의 서식지인 교실 앞쪽에서, 쉬는 시간이면 게임잡지를 탐독하거나 곧 출시될 게임의 종족별 밸런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한편 교실의 뒤쪽은 펄럭 바지들과 달리 핏의 중요성을 이미 열네 살부터 인지하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의 차지였다. 키 클 것을 고려하여 제 몸보다 서너 배는 큰 교복을 산 덕분에, 옷을 몸에 올려놓고 다녔던 펄럭 바지들과 달리 그들은 현재에 충실했다. 몸에 딱 맞는 상의 재킷과 바지를 입었고, 두발 독재에 앞장선 학생주임의 폭압에도 꿋꿋이 항거하여 구레나룻을 기른 멋진 머리를 유지했다. 그 덕에 항상 예쁜 여자애들과 함께 놀았다. 펄럭바지들은 그들의 생태환경과는 달리 암수가 존재하는 저너머 생태계를 가끔 힐끔거렸지만, 곧 그들의 열띤 토론의 장으로 돌아갔다.

 

 바야흐로 소년이 펄럭 바지 3년 차였을 때, 새로 배정된 반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다. 서식했던 생태환경의 특징 상, 이성의 호감을 얻기 위한 요소들은 진화론적으로 퇴화되었으나, 소년은 새로운 생태계로 옮겨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었고 변화가 필요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즈음, 곧 시작되는 2학기를 진화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했다.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여러 요소들이 검토되었다. 교복핏을 바꾸는 것은 너무 급진적이었다. 갑작스레 자신들의 생태계로 진입하려는 낯선 종을 잘 나가는 애들이 싫어할 위험이 컸다. 멋있어지면서도 기존 세력의 반감을 최소화할 대안이 필요했다. 그렇게 최종 선택한 진화의 시작은 구레나룻이었다. 처음으로 소년은 미용실에서 '구레나룻은 남겨주세요' 란 말을 해봤다.


 흡족했다. 2년 반 동안 해왔던, 남성 생식기 특정 부위를 빗댄 멸칭의 머리 모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불과 2센티 정도 남겨진 구레나룻이었는데 멋짐이 가득했다. 방에서 2센티의 구레나룻을 거울로 비춰보면서 자신의 멋짐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졌다. 내일 학교에 가면 소년의 서식지는 반 뒤쪽이 될 것이다. 여자애들이랑 투닥거리기도 하고 같이 노래방도 가고, 그러다가 사귀기도 하면서 22일의 기념으로 200원도 받고 하겠지. 컴백무대를 앞둔 아이돌처럼 소년은 부푼 기대에 잠을 뒤척였다.


"개나 소나 구레나룻 기르네"


 여름방학이 끝난 첫날 소년의 구레나룻에 내려진 유일한 평가였다. 반에서 3등 정도로 예쁜 지영이었다. 3등 정도로 예뻤기 때문에 지영이의 평가는 권위가 있었다. 정확히 등 뒤 45도 각도 방향, 그러니까 3 분단 4번째 책상에 앉은 3등 지영이의 평가를 똑똑히 두 귀로 들었을 때, 자신의 태생을 잊고 남겨둔 구레나룻이 쭈뼛 서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런 망할.. 나대지 말고 걍 귀두컷 하는 건데" 


  2센티의 구레나룻을 통해 시도했던 서식지 이동, 아니 신분상승을 향한 도전은, 분수를 모르는 하층계급의 만용 정도로 일단락되었다. 소년은 지영이를 반에서 4등 정도 예쁜 애로 강등시킴으로써 잔인한 평가에 대한 보복을 단행했다. 4등 정도로 예쁜 지영이의 치욕스러운 평가를 못 들은 척했기 때문에, 구레나룻을 바로 밀어버릴 수는 없었다. 학주의 폭압을 명분으로 잘려나갈 때까지 구레나룻은 추노꾼에 잡혀 온 노예의 낙인 마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소년의 두개골 양 옆에 힘겹게 달려있었다. 그렇게 소년은 펄럭 바지들의 서식지로 돌아와 꽃다운 16세를 마감했다.


 고등학교를 거쳐 스물을 넘기면서 소년은 비로소 암수가 함께 하는 생태계에서 살아갈 수 있었고 연애도 했다. 소위 '패피'는 아니라도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이성의 호감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도록 하는 안목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머리 모양이든 옷차림이든, 과감하고 전위적인 시도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17년 후 투 블록 컷이 유행했을 때도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옷장에는 마치 악당의 것을 연상시키는 듯한, 검정과 회색의 옷들로 가득했다. 그의 꾸밈에는 절대적인 경계선이 있었는데, 4등 정도로 예뻤던 지영이의 잔혹한 평가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년의 심사숙고 끝에 단행된 변신에 빠르고 단호하게 내려진 권위 있는 혹평이었다. 이것은 그가 즐겨하던 게임 속 스나이퍼처럼, 깊숙한 어딘가를 정밀 조준하여 명중시킨 한마디였다. 


 의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을 인생 한 구석에 쌓아놓고 살아간다. 이 중 그 사람의 인생에 계속해서 간섭하는 기억들이 있다. 지영이는 이 사실을 전혀 알 수 없겠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인생에 간섭할 기억들을 만들어냈을지 모른다. 그게 좋은 기억이라면 즐거운 사실이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면 슬픈 일이다. 무인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이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최선은 내가 남길지 모를 타인의 기억에 대해 조심하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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