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이라는 테마를 담고 있는 영화 '메기'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이 글귀처럼 의심의 구덩이에서 얼른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매일 '백신'이라는 구덩이를 더 파고 있다.
'백신, 꼭 맞아야 하나?'
코로나 백신 접종이 처음 시작될 때는 독감 백신처럼 당연히 맞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업무 스트레스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얻은 흉통으로 인해 생각이 변했다.
흉통이 바로 코로나 백신 부작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건강하지 않다. 달고 사는 병이 한 둘이 아니다.
또, 연일 보도되는 백신 부작용 사례를 보고 있자니 돈과 시간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없이 고통 속에 있었던 지난 시간들이 나를 다시금 불안하게 만든다.
이 불안은 백신 부작용을 대하는 방역을 담당하는 이들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해자 혹은 유족들은 건강했던 사람이 백신을 맞고,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데 이 목소리에 정부는 한결같이 백신에 의한 부작용이 아닌 기저질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듯하다.
고통의 시간 속에 있을 때 만난 의사들이 딱, 이랬다.
내 몸은 분명 이상 신호를 보내는데 그들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무언가 더 물어보려고 하면 귀찮다는, 성가시다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기사, 소스가 되는 국민청원 사이트의 글을 보면 과거 내가 겪었던 고통이 떠오르며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매일, 매 시간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접종률 현황을 보면 더욱 마음이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방역에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백신을 맞았다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일을 잘하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만 있는 것 같아서.
정부가 백신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보다 분명하고 적극적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나는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백신 부작용이 더욱 걱정된다.
건강한 사람도 부작용으로 고생하는데, 평소에 약을 달고 사는 사람은 오죽할까 싶다.
부작용이 백만 분의 1의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 러시안룰렛에 걸린 사람은 천문학적인 확률의 주인공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은 '백신 패스'라는 카드를 꺼내 드셨다.
18세 이상 미접종자 추가 예약률이 굉장히 낮게 나오고, 점점 커지고 있는 '위드 코로나'에 대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함으로 보인다.
백신 접종은 분명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나눠 접종이 의무였던 것처럼 암묵적인 강요로 느껴지게 한다.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나누려고 할게 아니라 '왜 추가 예약률이 낮게 나오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찾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게 먼저 아닐까.
나는 마냥 백신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 나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처하는 정답이 막연하게 백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답은 개인 위생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나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개인위생에 신경 쓰고, 집과 직장만을 오가며 특별한 외출은 일절 삼가며 생활해 왔다. 이렇게 노력하지만 길거리에, 대중교통에 '나 하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겐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으면서, 백신 미접종자에게 음성 확인서가 없으면 다중이용시설을 제한하겠다고 한다.
자격증이 우대받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다.
사람 일 어떻게 될 지 몰라 10월 중순 백신 접종 예약을 해두긴 했지만, '백신 맞아야 하나?' 이 질문은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계속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