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에서 제일 뒷 그룹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의 첫 마라톤 대회는 2023년에 열린 '서울달리기'이다. 원래 뛰는 속도가 느린 데다가 인파가 많아 뒤쪽에서 출발하다 보니 낙오자용 회송 버스와 제일 후미에 달리는 분, 통제가 끝난 도로를 반환점(결승점에서 약 2, 3km 남은 곳으로 기억한다)을 돌고 나서 보았다. 1년 뒤 똑같은 대회에 출전했고 야심 차게 지난 대회의 기록을 깨보리라는 다짐까지 했으나 결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맨 뒷 그룹 신세였다.
어찌 된 영문이냐면 사연이 좀 길다. 2024 서울 달리기는 그전 해와 달리 사전 기록을 받아 출발 그룹 배정을 했다. 기록 제출을 하지 않았던 나는 제일 뒷 그룹에 배정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한참 기다렸다가 출발을 하게 되었고 문제는 출발 전부터 가고 싶었던 화장실이었다. 이미 화장실을 갔다 오긴 했으나 계속 기다리다 보니 점점 차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출발하고 광화문 광장을 지나면서 화장실 위치를 확실히 아는 이곳에서 화장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대열을 이탈하여 광화문역으로 뛰었고 화장실 볼 일을 보고 다시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처럼 배번호를 부착한 분을 한 명 봐서 밖에 인파가 어느 정도 있겠거니 하는 기대로 나왔으나....
그 많던 참가자와, 응원단은 아무도 없었다. 도로는 텅 비어있었고 먼저 출발한 하프그룹이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아 반대편 도로에서 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텅 빈 도로를 혼자 뛰었다. 철수하던 응원단이 홀로 뛰고 있는 나를 보고 거북이님 화이팅!!을 외쳐주셔서 부끄러웠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 광화문에 도착하니 도로 통제하는 경찰께서 '이제 철수해야 하는데 빨리 가라'는 핀잔을 주셨지만 아직 약 11km를 더 뛰어가야 하여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뛰었고 작년처럼 낙오자용 버스만 타지 말자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뛰다 보니 앞에 사람이 한 두 명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심지어 뒤에서 뛰어오다가 나를 앞질러 가는 분들이 계셨다. 그렇게 맨 뒷 그룹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1. 앞부분 도로 표지판은 철거한다: 내가 달리고 있을 때 1km 표지판을 철거하는 것을 보고 슬펐다. 나는 1km 아직 도달을 못했단 말이다!!!
2. 초반에 포기하는 인원이 있다: 약 1~2km 때 포기하시는 분들을 보았다. 뛰다가 통제인원에게 말하고 빠지더라. 대회 옷을 입고 광화문역으로 가시는 분들도 보았다. 이 분들도 뛰다가 포기하신 분들이겠지.
3. 뒤에 구급차가 따라온다: 풀코스 마라톤 중계에서나 본 뒤에서 따라오는 구급차를 볼 수 있다. 뒷 그룹에서 쓰러지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것이려나..
4. 통제 이제 해제해도 되냐는 무전을 들을 수 있다: 아직 뛰고 있는데 해제라뇨!!!
5. 음수대에 물컵이 쌓여있다: 아예 음수대에 계시는 분들이 컵을 건네주신다. 앞~중간 그룹에서는 따르느라 정신이 없으시지만 이제 수요 없는 공급이다.
6. 뛰어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분들을 볼 수 있다: 보통 대회를 하면 참가자가 계속 뛰어오기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맨 뒷그룹은 뛰어오는 사람이 적어서 보행자들이 뛰어오는 참가자들을 잘 피해서 잘 건너신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정말 다행히 완전 맨 뒷 그룹에서 뒷 그룹 정도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고 통제 시간인 1시간 30분 안에 완주했다. 페이스를 보니 초반에 맘이 급해서 빨리 뛰었더라.. 어쩐지 힘들었다. 안 걷고 들어오고 싶었으나 그렇게는 못했고 적당히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들어왔다. 화장실을 안 갔으면 기록이 좀 더 잘 나왔겠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거북이'이기 때문에 기록에 큰 연연하지 않고 무사히 통제 시간 안에 들어온 것이 만족한다. 텅 빈 도로에서 혼자 뛰는 색다른 경험도 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