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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엉뚱하고, 가끔은유쾌한 동거동락

흰머리 소년과 함께 장에 가면

by 글터지기

일러두기 : 흰머리 소년은 제 아버지입니다.

15년 전 뇌경색으로 한 번, 7년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한 번.

두 번의 생사를 넘기시고 저와 함께 생활하고 계십니다.




올여름 흰머리 소년 방 침대를

싱글에서 슈퍼싱글로 바꿔 드렸습니다.


이불 세트도 사이즈에 맞춰서 바꿔드렸는데

패드가 좀 작아서 전기매트를 아래에 깔면

자꾸 미끄러져서 불편하시다고 하셨지요.


카드를 줄 테니 알아서 사 오라고 하셨지만,

내심 시장에 함께 나가시고 싶었나 봅니다.


오늘 일을 일찍 마치는 날이기도 하고,

흰머리 소년 '민생지원금'으로

침대 패드를 하나 사기로 한 겁니다.


일찍 퇴근해 보니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요즘 산책하는 길에 만나는 어르신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고 계시거든요.


전화를 드렸지요.


"아버지, 언제 들어오세요?

시장 가려는데 카드 주신다면서요?"


"어 금방 들어간다."

그런데 끊기지 않은 전화기 건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아들이 시장 가자네, 침대 패드 사준다고.. 하하"


같이 나가고 싶다고 하시면 되는데

그걸 말하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사람들에게는 딴소리를 하시는 겁니다.


결국 함께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예상하신 바와 같이 패드만 산 건 아닙니다.

조끼 한 벌에, 만두 가게, 빵 가게까지

이리저리 기웃거리십니다.


사 와봐야 다 먹지도 못하는데

'나온 김에 사가야 한다'며 우기시는 걸

오늘은 제가 이겼습니다. 하하


시장에 함께 나가면 늘 이런 식입니다.

결국 이기지 못하는 나들이지요.


KakaoTalk_20251021_214433716_01.jpg 가끔 보면 참 미남이십니다.


집에 돌아와 전기장판과 침대 패드를

움직이지 않게 새로 깔아 드렸지요.

교체 과정에서 보니 침대가 뜨겁습니다.


"아버지, 전기장판 틀어놓으셨나 봐요?"

"어 그건 낮에 켜놓고 잠잘 때 끈다."


"그건 반대 아니에요? 잠잘 때 따뜻해야지."

"난 이불에 들어갈 때만 따시면 된다"


"그래서 안 쓰는 낮 동안

장판을 틀어놓으신다고요?

그럼 전기세는 아버지가 내셔야겠구먼..."


퉁을 놓으니 슬쩍 거실로 피하십니다. 하하하

그 뒷모습에 웃음이 났습니다.


가끔은 엉뚱하고,

가끔은 유쾌한 동고동락입니다.


가만있어보자..

이번 달 전기세가.. 흠...

KakaoTalk_20251021_214433716.jpg 이제 패드기 미끄러질 일은 없겠습니다.


*에필로그

그간 브런치북으로 연재해 온

'흰머리 소년과의 요절복통 항해기'는

20화를 끝으로 발행했습니다.


이제는 매거진에

흰머리 소년과의 일상을 써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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