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일에 즐거운 일요일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헬스장에 갔습니다.
넓은 공간에 사람은 저 혼자니까
마치 내 세상처럼 그간 눈치만 보던
기구들을 시간 구애 없이 매달려 본 날이지요.
새벽 출근이 일상이니까
운동을 먼저 하는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집에 와서 새벽 글을 쓰는데
이전까지 알지 못하던 흥겨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권하는구나 싶었지요.
아침 일찍 흰머리 소년은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 하십니다.
"벌써 운동 가시려고요?"
"목욕 가기로 했잖냐?"
오잉? 제가요? 오늘?
지난주에 '월 말에 목욕이나 한 번 가자'던
그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게 오늘일 줄이야.
저는 운동하고 샤워까지 다 하고 왔는데
오늘을 기다리신 흰머리 소년을 생각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다녀왔습니다.
오래간만에 뵙는 세신사께 인사도 드리고
흰머리 소년 세신하는 것도 지켜보고
행여 넘어지지 않을까 싶어 옆을 지켰습니다.
내심 오늘을 많이 기다렸을 겁니다.
아들놈이 어딜 같이 가지 않으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컨디션이니까요.
오늘 혼자서 신이 나셨습니다.
"아~ 시원하다~~"
"어? 여기 옆에 칼국수 집이 있네..
여기 와서 점심 한 그릇 먹어도 되겠네"
어르신 혼자 식당에 가면 눈치가 보인답니다.
주인이나 사람들에게 민폐인 것 같아서요.
혼자 다니시는 흰머리 소년은 더 하겠지요.
"배고파요? 칼국수 한 그릇 드실래요?"
"아니다. 배 안고프다. 다음에 봐서 오지 뭐"
집에 와서는 티브이를 보시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신발은 그 자리에 있고
옷도 그대로 걸려있는데.. 흠...
거실에 나와보니 역시..
즐기시고 계십니다. 하하하
이런 걸 전문용어로 '풀코스'라고 합니다.
"아버지, 오늘은 풀코스로 즐기시네요."
"운동 갔다 오면 한 번씩 한다."
"잘했어요. 자주 사용하세요"
덩달아 흥겨워진 나란 놈이란.. ㅋㅋ
별로 한 거 없는데 뿌듯한 일요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