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라면 이것도 온기입니다. 하하하
입영 전야, 이발소에 앉아 머리를 깎습니다.
고만고만한 스포츠머리로 입영소를 통과합니다.
군인 하면 '짧은 머리'가 떠오릅니다.
군인정신을 상징하고, 군기를 가늠하는 짧은 머리.
사실 짧은 머리는 전투 간 생명 유지를 위한
처절한 준비이자 각오입니다.
백병전(육박전이라고도 합니다)에
머리가 잡히는 순간 목이 드러나기 때문에,
긴 머리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4년 군 생활동안 제가 스포츠머리로 산 이유이고,
지금도 긴 머리가 익숙하지 않아 관리가 어렵습니다.
머리를 말리는 '헤어드라이어'는 그래서 제게는
오랫동안 필요하지 않은 아이템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구매한 드라이어는
가지고는 있지만 사용은 하지 않는 전시물 같은 거죠.
모든 물건은 '쓰임'이 있습니다.
휴대폰이 전화를 할 때 쓰임이 있듯,
헤어드라이어도 쓰임이 분명하지요.
그런데 흰머리 소년께 '쓰임'이 분명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헤어드라이어입니다.
매일 드라이어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짧게는 2분, 길게는 5분.
분명한 건 매일, 한 시간에 한 번 이상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이 사용하시나 보면,
티브이를 보시다가 문득 발에 대고 틀기도 하고,
상의 속 2분, 하의 속 3분 이런 식이고,
화장실을 다녀오시면 반드시 틀어 놓으십니다.
"아버지, 왜 그렇게
자주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세요?"
자 여기서 청취자 퀴즈를 드립니다.
흰머리 소년의 답변을 생각나는 대로 써주세요. ㅋㅋ
"배가 나왔잖냐? 설거지를 할 때나,
화장실에서 손이라도 씻고 나오면 배가 젖는다."
"옷이 젖을 때 사용하는 건 그렇다 치고,
그렇지 않을 때 왜 그리 자주 사용하세요?"
"발이 시리다. 배가 시리다"
"전기담요 덮으시라니까
그건 아직 쓸 때가 아니시라면서요?"
"전기세 나가게 뭐 벌써부터 쓰냐"
이쯤 하면 저는 웃다가 쓰러집니다. ㅋㅋㅋ
'아버지, 헤어드라이어 그렇게 쓰시는 게
전기세 더 나와요" 하고 싶지만
지상 최대의 낙을 회방 놓는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습니다.
요즘은 문득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다르게 들립니다.
'위~~ 잉~'하는 소리가 들리면 정겹습니다.
제겐 평생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이
흰머리 소년에게는 작은 온기일 테니까요. ㅋㅋ
차가운 계절을 견디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듯,
흰머리 소년의 방법은 '헤어드라이어'입니다.
어쩌면 삶의 쓰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방에서 들립니다.
이쯤 되면 한마디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