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13일은 한국전쟁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동계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Battle of Chosin Reservoir)'가
사실상 마무리된 날입니다.
이 전투는 혹한과 포위 속에서 이루어진
철수이자 생존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에서 벌어졌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이어가며 압록강 인근까지 진출하였으나,
11월 말 중국 인민지원군 대규모 참전으로 전황은 급변합니다.
특히 미 제10군단 예하 미 해병 1사단과
미 육군 부대는 장진호 부근에서
중국군 수십만 명에 의해 포위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전투의 가장 큰 특징은 혹독한 동계 자연환경이었습니다.
당시 기온은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졌고,
무기와 장비는 얼어붙었으며,
부상병들은 적보다 추위와 먼저 싸워야 했습니다.
동상과 저체온증으로 인한 피해가
전투 손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유엔군은
단순한 패퇴가 아닌,
조직적이고 전투적인 철수를 선택합니다.
일명 '다른 방향으로의 공격'.
포위망을 뚫고 장진호에서 흥남항까지
약 120km를 이동하는 동안 수차례 격전을 치렀고,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부상병과 장비를 최대한 보존했습니다.
이 철수 작전은 군사사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1950년 12월 13일,
미 해병대와 유엔군 주력은
흥남 일대에 집결하며 장진호 전투는
종료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이어진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군인뿐 아니라
약 1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까지
남쪽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장진호 전투는 전술적으로는 후퇴였지만,
전략적으로는 유엔군 전력의 보존과
전쟁 지속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전투는 지금까지도
'패배하지 않은 철수',
'다른방향으로의 공격',
'동계전투의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장진호 전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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