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 30일, 단발령 공포

음력 11월 15일

by 글터지기

1895년 12월 30일(음력 11월 15일),

조선 정부는 남성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도록 단발령을 공포합니다.


이는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근대화 정책 가운데 하나였지만,

사회 전반에 거센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상투는 단순한 머리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유교적 질서 속에서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가치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부모에게서 받은

몸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곧 조상의 가르침과

신분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단발령은 갑작스럽고 강압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관청과 군대에서 먼저 단발을 시행했고,

거리에서는 관리와 군인이 백성들의 상투를

강제로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욕감과 분노가 누적되었고,

민심은 급속히 이반되었습니다.


특히 이 조치는 을미사변 이후

친일 내각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반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단발령은 ‘근대화’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강요된 변화,

그리고 전통을 짓밟는 폭력으로 인식되었지요.


결국 단발령에 대한 반발은 을미의병 봉기의

직접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전국 각지에서

“머리 자르느니 목을 자르라”는 구호가 퍼졌고,

무장 항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단발령은 시행 과정의 무리함과

거센 저항 속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집니다.


이후 대한제국 수립과 함께

단발은 점진적으로 확산되었지만,


1895년의 단발령은 조선 사회가

근대라는 이름의 변화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맞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단발령'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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