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월 26일, 서울역 압사 참사

by 글터지기

1960년 1월 26일,

서울역 광장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설을 앞두고 고향으로 향하려는

귀성객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이었습니다.
당시 교통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았고,

인파 통제에 대한 개념 역시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습니다.
플랫폼과 계단, 출입구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고,

넘어지는 순간 연쇄적으로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그날 서울역에서는 호남선을 타려던 승객,

31명이 목숨을 잃고, 41명이 부상하는

압사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정원 80명인 열차 한 량에 200명의 표를 발매,

8량의 기차를 18량으로 증차,

사고 당일 개찰을 5분 전에 시작,

예매한 표는 지정석이 아니었습니다.

3900명의 사람들이 개찰구에 집중되었지요.


당시는 '불운한 사고'로 기록되었고,
책임의 주체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깊지 않았습니다.


군중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감내해야 할 풍경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62년이 지난 2022년 10월,

서울 이태원에서 비슷한 비극이 반복됐습니다.


축제를 즐기려던 평범한 주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좁은 골목에 과도한 인파가 몰렸고,

사람들은 ‘흐름’이 아니라 ‘압력’ 속에 놓였습니다.


두 참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분명해집니다.


첫째, 사람이 많았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둘째, 위험은 예고 없이 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미 혼잡은 감지되고 있었지만,

'설마'라는 판단이 반복되었습니다.

셋째, 사후에는 늘 개인의 부주의가

먼저 언급되었다는 점입니다.


1960년에도, 2022년에도
사람들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동하려 했고, 즐기려 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서울역 압사 참사는

산업화 이전의 비극으로 남았고,
이태원 참사는 선진국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음을 두 사건은 보여줍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하지 않을 때 반복됩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서울역 압사 사고' 발췌

https://namu.wiki/w/%EC%84%9C%EC%9A%B8%EC%97%AD%20%EC%95%95%EC%82%AC%20%EC%82%AC%EA%B3%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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