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집 같습니다.
드디어 어젯밤 늦게 흰머리 소년께서
손녀의 에스코트로 인천 공항을 통해
버스를 타고 집에 복귀하셨습니다.
캐나다 동생네 조카가 같이 귀국을 해서
며칠 우리 집에 함께 머물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모처럼 온 집 공기가 싸늘할까
보일러 온도를 높여놓고,
작은방에 조카가 쉴 수 있도록
잠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늦은 시간이다 보니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 줘야겠다 한 건
오늘 저녁식사로 미뤄 두었습니다.
"아버지, 아쉬워서 어쩐대요?
비행기 탈 때 눈물 한 바가지 흘리셨겠구먼."
"그렇지 뭐. 캐나다에 가니까 거기 애들이
나 때문에 고생했지. 뭐라도 하나 더 해준다고.
이 서방도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해서
매일 운전하고 다니느라 고생하고.."
흰머리 소년은 터미널에서 복귀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쉼 없이 방언이 터졌습니다.
아쉬움이 크시겠지요.
피곤함도 겹쳐 다크서클도 턱까지 내려오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출국할 때 가져간 캐리어 말고
다른 커다란 캐리어가 함께 왔습니다.
"뭐 이렇게 많이 싸 들고 오셨어요?"
"꿀 하고 과자 몇 개뿐이다..."
물건을 하나씩 꺼내는데 끝도 없습니다.
동생이 흰머리 소년 챙겨 드시라고
비타민과 효소 여러 통,
스낵 빵 몇 박스, 과자 등이 쏟아져 나왔지요.
물론 제가 기다리던 커피도 네 통이나 있습니다.
'마음지기'가 캐나다 꿀이 좋다고
딱 한 병만 사 오시라고 한 말은 잊지 않으시고,
넉넉하게 여섯 통이나 가져오셨습니다.
"아버지, 이거 다 누가 먹으라고.."
"너 먹으라고 가져왔지."
그리곤 새침하게 자신 물건을 챙기십니다.
"비타민은 내 방에다 둬라,
이 빵 과자는 내 거다..."
그렇게 하나둘씩 흰머리 소년
도토리 창고에 도토리가 쌓였습니다.
방 문을 열지 않고 고립되더라도
1년은 거뜬하실 분위깁니다. 하하
"아버지, 내가 과자 좋아한다고 하셨다면서?"
"안 먹지는 않지.."
"그런데, 왜 내가 먹을 건 비스킷 한 통이에요?"
이때부터 역시 말이 사라지셨습니다. ㅎㅎ
좋은 것은 늘 이렇게 넉넉한 마음인가 봅니다.
캐리어 안에서 부피를 키우고
비타민과 꿀 사이에 조용히 그 넉넉함을 담아
집까지 고이고이 간직해 오셨습니다.
이번에 캐나다 '말로만 효녀'(여동생)는
'제법 효녀'로 승진을 한 셈이지요.
시간도 돈도 많이 썼을 겁니다.
이제 조카가 잠시 집에 왔으니,
오늘은 제가 조카 대접을 해 줄 차례입니다.
말 수가 늘었고, 짐은 더불어 늘었지요.
물론, 집은 다시 따뜻해졌습니다.
밤늦게까지
흰머리 소년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방에서 다시 앓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동안 들리지 않았던 정겨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