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소년의 징크스

두부찌개

by 글터지기

꼭 이런 일만 하면 일이 안 풀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징크스'라고 부르지요. 흰머리 소년께도 최근에 생긴 징크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두부찌개 징크스'입니다.


제가 두부 장수라 그런지 두부를 참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흰머리 소년이 끓여주시는 두부찌개는 제 최애 메뉴입니다. 덕분에 식탁에 두부찌개가 오르는 날이 잦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두부찌개가 뜸했습니다. 굳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찌개가 아니어도 밥은 먹으니까요.


며칠 전,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주방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납니다.


"아버지, 뭐 하세요?"

"두부찌개 하지. 너 먹으라고."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아버지… 저 오늘 약속 있어서 나가야 되는데요."


흰머리 소년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거참 희한하지. 꼭 내가 두부찌개만 하면 네가 나가더라.

그래서 요즘은 두부찌개를 하기가 싫어."


이쯤 되면 두부찌개가 문제가 아니라 '아들놈의 외출'이 문제인 셈입니다.

아마 속으로는 이런 계산이셨겠지요.

'내가 두부찌개를 안 하면, 저 녀석이 나가서 술 마실 일도 없겠지.'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해두세요. 언제든 먹으면 되지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의욕이 샘솟으셨는지 양념을 갈고, 두부를 썰고, 냄비를 올리시고,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동전 육수를 슬쩍 넣으십니다. 저는 또 모른 척합니다. 아버지의 자존심은 지켜드려야 하니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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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돌아오신 뒤 시차 적응과 컨디션 회복이 다 되셨는지 어제는 대목장인데도 시장을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운동 나갔는데 노인네가 한 명도 없더라. 그래서 집 앞 마트 갈까 하다가 택시가 오길래 잡아타고 시장을 갔지. 잡채 사 왔다. 잡채에 밥 볶아 먹으면 맛있어." 하며 웃으십니다. 사실은 본인이 잡채가 드시고 싶은 거였으면서. ㅋㅋ


별거 안 사 왔다고 하시지만 냉장고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본인이 들 힘이 부족해 그만큼뿐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여집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린아이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어처구니없고, 때로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두부찌개가 식탁에 오르는 날과 제가 약속을 잡는 날이 겹치는 것이 징크스라면, 반대로 제 입장에서는 밖에서 회식이 잡히는 날마다 흰머리 소년께서 두부찌개를 하는 게 징크스입니다. 하하하


그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같이 밥 먹고 싶다', '나가서 술 마시지 마라'라는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부찌개가 끓는 집에는 아직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아직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이건 징크스라기 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의 타이밍을 조절하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다음번 두부찌개 날에는 약속을 미뤄볼까 합니다. 세상 회식이야 또 하면 되고 흰머리 소년의 두부찌개는 세상 최애 음식이니까요.


"아버지, 다음엔 두부찌개 한다고 하루 전에 알려 주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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