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소년의 시차는 아직 귀국하지 못했습니다

귀국해서 첫 음식은 '두부찌개'

by 글터지기

흰머리 소년께서는 캐나다에서

귀국하신 뒤로 거의 잠만 주무십니다.
낮에도 주무시고, 밤에도 주무십니다.


그러고는 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제가 들어올 때 들린 코고는 소리는 누구? ㅎ


말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몸은 영 딴판입니다.
시차에 적응하느라 늘 피곤하시고,

시시때때로 잠이 쏟아지시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은 새벽에 저보다 먼저 일어나
동계올림픽을 틀어놓고 진지하게 시청하고 계시고,
또 어느 날은 저녁 밥상을 다 차려 놓았는데도
부르다 부르다 포기할 만큼 깊이 주무십니다.


"아버지, 이래도 내년에 캐나다 또 가시겠어요?"

슬쩍 떠보듯 물었더니,

잠시 생각하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음에 가면 한 달 이상 있다 올 거야.

그러니까 문제없다."


한 달을 계시든, 일주일을 계시든
다녀오시면 이렇게 피곤해하시면서
괜찮다고 우기시는 것도 병이라면 병입니다. 하하.


ChatGPT Image 2026년 2월 7일 오후 05_01_45.png


캐나다에서 잔뜩 싸 들고 오신 짐을 풀어 보니
과자, 빵, 비타민까지 모든 물품이 흰머리 소년 방,

일명 ‘도토리 창고’로 직행했습니다.


제게 남은 건 비스킷 한 봉지.

그마저도
“네 오빠가 좋아하는 거다”
라는 말과 함께 바리바리 싸 오신 것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좀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따져 물었습니다.


"아버지, 동생한테는 제가 과자, 빵

좋아한다고 하시고 사 오신 거라면서요?
저 하나도 안 먹는 거 아시면서,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


며칠간의 취조 끝에, 결국 이실직고를 하십니다.


"야, 저 빵이랑 과자가 달달하고 맛있는데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네 동생이 얼씨구나 하고 사주겠냐.
건강에 안 좋다고 다 뺏어버리지.
그래서 할 수 없이 널 팔았지.”하며 웃으십니다.


그 순간, 저는 정말 크게 웃었습니다.

고혈압에 당뇨까지 있으시니
동생은 흰머리 소년이 단 걸 드시는 걸
철저하게 단속합니다.

결국 본인이 드시고 싶은 걸 지키기 위해
아들놈 하나쯤은 싸구려로 팔아넘긴 겁니다. ㅎㅎ


처음에는 그저 우습고,
흰머리 소년이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까지 들먹이고, 딸 눈치까지 보며
먹고 싶은 것도 마음 편하게

사 오지 못하는 그 마음이
슬그머니 짠하게 올라왔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몸이 먼저 늙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멀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들놈 핑계라도 아직 웃음이 남아 있고,
아들을 싸구려로 팔아넘길 만큼의 위트와
달달한 욕심이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먹고 싶은 건 몰래 먹는 게 제일이고,

걸리면 팔아넘길 아들놈이 있고.. 하하



*에필로그

집에 오시자 마자 제일 먼저 한 음식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부찌개'입니다.


이건 저 먹으라는 게 확식합니다. ㅎㅎ


KakaoTalk_20260207_170425046.jpg


매거진의 이전글흰머리 소년, 귀국 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