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3·1운동

by 글터지기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일제 강점기 아래 있던 조선 민중이

독립을 선언하며 일제히 일어선

전국적 비폭력 항일운동이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열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도 독립선언서를 외치며

"대한독립 만세"를 삼창했습니다.


시위는 곧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고,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민중이 참여했습니다.


3·1운동의 배경에는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이어진

일제의 무단통치와 억압,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민족자결주의 사상이 있었습니다.


특히 고종의 서거와 관련된 독살설은

민심을 더욱 격앙시켰습니다.


이 운동은 비폭력 만세 시위를 원칙으로 했지만,

일본 당국은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이 체포·투옥되는 등

큰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불길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3·1운동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 상하이)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국내외 독립운동의 방향을 정립하고,

무장투쟁과 외교활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3월 1일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날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은

단지 한 시대의 함성이 아니라,

스스로 주권의 주인임을 선언한

민중의 목소리였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3·1운동' 발췌

* 나무위키 '3·1운동'

https://namu.wiki/w/3.1%20%EC%9A%B4%EB%8F%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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