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러 가는 길

동기생을 만나러 갑니다

by 글터지기

오늘은 십여 년 만에 군 동기생들을 만나러 갑니다.


군 생활을 함께했던 동기들을 일부러 피하며 살아온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제 가정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만나는 두 사람은 육군대학 시절 청춘을 함께 보냈던 동기들입니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소령으로 진급한 장교들을 육군대학에 소집해 약 3개월간 단기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성적 상위 10퍼센트 정도만 정규 과정으로 선발되어 1년간 추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분위기는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힐 만큼 치열했습니다. 소령으로 진급한 장교라면 누구나 그 10퍼센트 안에 들기 위해 죽기 살기로 전술학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제 삶에는 전혀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엄마가 폐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열로 응급실을 오가다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폐심실 절제술을 받게 되었고, 그 수술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긴 싸움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육군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전술학 수업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동기들이 토의에 참여하고 창의적인 작전 안을 제시하며 밤을 새울 때, 저는 병원과 학교 사이를 수없이 오르내렸습니다.


시험 기간이면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전술학 규범을 펼쳤습니다.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습니다.


그렇게 버텨낸 끝에 저는 결국 정규 과정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바로 오늘 만날 동기생들입니다. 결과적으로야 지금은 그녀와 함께하지도, 미련도 남아 있지 않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녀 원망하거나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시절 저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고, 그녀 역시 저를 믿어 주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군에서도 더는 진급하지 못했고, 가정 역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동기생들에게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점점 연락을 끊고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것이 가장 편한 선택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진작 동기생들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달 전, 한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제 글을 보고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원주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소령으로 전역한 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동기 한 명은 대령으로 예편해 지금도 군 관련 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근황을 몇 마디 나누다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 식사 한번 하자'가 아니라, '3월 7일 토요일 6시에 만나자.' 약속은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지금 이 글은 배송을 하면서 음성 입력으로 쓰고 있습니다. 냉장창고에서 물건을 옮기고, 매장을 돌며 납품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볍습니다.


아마도 오래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아서일 겁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도 듣고 싶고, 그동안 제가 숨겨두었던 이야기도 천천히 풀어 놓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청춘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참 묘하게 그립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다시 만나기 전의 설렘은 마치 그 시절 복도에서 다시 마주치는 것처럼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동기생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마 우리는 예전처럼 전술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각자의 삶에서 겪어낸 전투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지요.


청춘의 전우란 같이 싸운 사람이라기보다,

다시 만났을 때 아무 설명 없이도 마음이 풀리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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