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를 읽고
지난달 ‘브런치 독서 클럽’에서 추첨을 통해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특별판을 선물받았습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마음이 끌렸던 책입니다. 가부장이 아닌 ‘가녀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기도 했고,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집안의 가장이나 가부장이라고 하면 어딘가 묵직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가족을 책임지고 중심을 잡는 사람, 무게감 있는 존재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그와는 조금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낮잠 출판사'라는 가족 기업을 이끄는 이슬아 작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정직원으로 고용된 ‘복희’와 ‘웅이’도 함께 등장합니다. 복희는 작가의 어머니이자 먹거리와 행정 사무를 책임지는 직원이고, 웅이는 아버지이자 청소와 납품, 운전 등을 맡은 일꾼입니다. 모두 딸에게 고용된 직원이면서 동시에 가족입니다.
설정만 보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관계가 묘하게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이슬아 작가의 글은 늘 그렇듯 담백합니다. 특별히 큰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감동시키겠다는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사람 냄새가 짙어집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일, 생활비를 벌고 밥을 차리고 서로의 기분을 살피는 일들이 조용히 쌓이면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읽다 보니 '가녀장'이라는 말이 단순히 경제적인 가장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만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보고 책임지는 마음까지 포함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책 속의 풍경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가족의 모습은 대개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경제 활동의 중심에 있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가사 노동을 책임지며, 그 위에서 자녀들은 자신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을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너무 오래 한 가지 방식의 가족만을 떠올려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 역시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시간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하루를 버텨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꽤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게 '가녀장'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삶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공감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사 노동의 문제,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되던 역할, 그리고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차별의 시선을 담담하게 비춰줍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겁게 고발하기보다는, 유쾌한 문장과 생활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가녀장의 시대』는 대단한 해답을 주는 책은 아닙니다. 대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서툴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 하루를 이어가는 삶 말입니다.
가족이라는 건 누군가가 군림하고 따르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각자 나누어 짊어지고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가녀장'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1cm쯤 넓게 만들어준 소설이자 픽션입니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브런치 팀과 이슬아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