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선 탈락'을 포장합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이번 충주시 협회 주관 배드민턴 대회에서도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식의 변명을 꺼내기에도 민망할 만큼 실력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평소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이기도 하고, 세상에는 말없이 재야에 숨어 있는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패배한 이야기를 굳이 꺼낼 이유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대회는 제게 꽤 즐거운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클럽 회원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해 하루를 보내는 일 자체가 의미 있었고, 무엇보다 임원을 맡은 뒤 처음 참여한 공식 대외 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팀뿐 아니라 여러 팀이 함께 참가했습니다.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를 응원하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경기에 나서지도 않으면서 누군가는 음료를 들고 왔고, 누군가는 치킨을 사 와 함께 나눴습니다. 코트 밖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날
예선에서 '떨어졌습니다.'
문득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떨어지다'라는 동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다.
어떤 상태나 처지에 빠지다.
시험이나 선발에서 뽑히지 못하다.
정이 없어지다.
명령이나 임무가 내려지다....
네이버 표준국어 대사전
같은 동사인데도 쓰임은 놀라울 만큼 다양했습니다.
물건이 떨어지고, 시험에 떨어지고, 진지가 적의 손에 떨어지고, 어떤 사람에게 정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날에는 중요한 임무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같은 '떨어지다'인데 어떤 것은 패배이고, 어떤 것은 시작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줌 모임에서 저는 건방지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목표는 형용사로 꾸미되, 삶은 동사로 만든다."
멋진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삶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해놓고 나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정말 동사로 살고 있는 사람인가.
며칠 전 대회에서 저는 분명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떨어지다' 역시 하나의 동사입니다. 가만히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떨어지려면 먼저 올라가야 하고, 올라가려면 코트에 서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떨어지다'라는 동사조차 써먹을 수 없는 기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겐 매번 패배하고 떨어지는 대회를 나간다는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예선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코트에 서 있었고, 셔틀콕을 쫓아 뛰고 있었고, 사람들과 웃고 있었습니다.
삶이 동사로 만드는 것이라면, '떨어지다' 역시 그 안에 포함된 움직임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동사를 떠올립니다. 떨어진 사람이지만, 다시 도전하다, 연습하다, 일어서다 같은 다음 동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삶도 형용사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수없이 많은 동사를 하나씩 이어 가며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하나의 동사를 더 추가하려 합니다.
다시 운동화 끈을 "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