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30일, 의주학살사건

by 글터지기

1919년 3월 30일,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3·1운동의 여파로 독립 만세 시위가 확산됐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유여대 목사를 중심으로

의주 영산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4천여 명의 주민들과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을 외치며 평화적인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일본 헌병과 군경은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고,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발포와 폭력이 자행했습니다.


특히 이날 의주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향한 집단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수준을 넘어,

도망치는 주민들까지 무차별 사살하거나

체포한 뒤 가혹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7명이 순국했고,

이외에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 극단적인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의주 학살사건은 3·1운동이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일제의 폭력적 식민 통치에 맞선

민족적 저항이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일본의 무력 진압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독립운동이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날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3·1운동의

또 다른 비극적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유여대' 발췌

*참고 자료 : 최태성 '365 한국사 일력',

독립기념관 '1919년 3월 30일, 의주학살사건'


https://namu.wiki/w/%EC%9C%A0%EC%97%AC%EB%8C%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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