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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계절, 언제가 떠오르시나요?

더 단단해지는 하루

by 글터지기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폭염이라 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1994년, 대구.

기록적인 폭염으로 이름을 남긴 해였지요.


당시 저는 생도로 훈련 중이었습니다.

3층 구형 건물, 그 안에서도

이층 침대의 위칸에서 생활했지요.


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게 아니라, 정수리를 내려찍던 시절.


불침번을 서던 동기들은

옥상에 올라가 소방호스로 건물에 물을 뿌렸고,

우리는 새벽마다 두세 번씩

차디찬 물에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 시절 이후, 저는 찬물 샤워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 송곳 같은 통증이

아직도 어딘가 몸에 각인된 듯하니까요.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 생활은

참 좋은 시절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에어컨도 있고, 냉장물도 있고,

그래도 일할 수 있는 그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가장 덥고 힘든 시기는

항상 '지금'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아.'

'올해 더위는 진짜 장난 아니다.'

우리는 매년 그렇게 말합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여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고,

지금 이 순간이

늘 가장 버거운 계절처럼 느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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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극한의 폭우'라는 표현이

기상용어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모두가 이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그 영향이 미칠 미래의 불안에 대한

그럴싸한 대안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다만,

죽을 것 같이 힘들던 시절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감각은 희미해지고,

어느 순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 아닐까요.


지난 고통은 잊고

오늘을 살아내라는 조용한 위로.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견디는 동안 아프고 지치지만,

그만큼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는 과정이니까요.


그래서 오늘의 폭염도,

오늘의 고단함도,

결국은 기억 저편으로 스며들 테지요.


그리고 저는,

30년 전의 그때처럼,

혹은 어제처럼,

다시 오늘을 맞이합니다.


뜨겁고, 고통스러운 날이라도

언젠가는 내게 단단함을 선물하는

그런 날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을 삽니다.


모두, 지금의 폭염에

건강을 먼저 챙기는 하루가 되시길,

조금 더 단단해지는 하루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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