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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병원과 위로)

 ‘심야 식당’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새벽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독특한 설정만큼이나 식당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범상치 않다. 조폭을 비롯해 성인업소의 사장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수, 불륜이 들통난 작가. 이야기만 들어도 사회의 통념과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 썰물에 밀려나듯 가게를 채운다. 보통의 시선에서는 이상할 수 있으나 그들에게는 일상인 이야기. 이상한 사람들에게 생겨난 일반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 못한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선 당연스럽게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가게의 주인, 통칭 ‘마스터’라 불리는 사람이 서있다.


 마스터는 만들 수 있는 선에서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라면 어떤 것이라도 만들어 준다. 그리고는 주방에 서서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평범하지 않은 내용에 놀랄 법도 한데 마스터는 그저 묵묵히 들으며 요리를 만든다. 간혹 몇 마디 섞기도 하지만 손님과의 경계를 넘지는 않은 채 자리를 지킨다. 심야 식당은 주로 찾아오는 손님의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극을 전개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스터의 그런 모습이 더 큰 울림을 남기곤 한다.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다. 일반적인 사회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 아프고, 다치고, 당연한 것들을 하지 못한다. 사연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특히나 병원에는 온갖 사연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상하다 여겨질 만큼 이야기가 많은 편. 하루 2~3편의 사연만 들어도 1년이면 1000가지에 가까운 사연이 모인다. 누군가에게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사연일지 모르지만 환자인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처음의 나는 이야기 하나에 하나의 표현을 드렸다. 마치 내가 무슨 위로라도 할 수 있는 마냥, 그들을 치료하며 내가 무엇인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다. 내 말 한마디로 위로를 받지는 않을까. 한 마디에 힘을 쏟아 이야기했다. 그들 삶의 경계선을 넘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이야기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쏟아지는 사연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나는 금방 지쳐갔다. 지치면 나오는 나의 반응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마디의 말이 아닌 들어주는 귀였다는 것을.


 사람은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그 위로조차 하소연할 사람이 없었으니 쌓여만 갔을 것이다. 아무라도 붙잡고 매일 같은 이야기라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마음도 아팠음을 알아챈다. 그렇기에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들어주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이후로는 그저 묵묵히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치료를 묵묵히 하면서 귀만 열어 놓는다면 그걸로 되었다. 나는 몸을 치료하고 있지만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이것이 심야 식당을 지키며 이상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듣는 마스터를 보며 마음이 울렁이는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자리를 지킨다. 그 자리에 서서 긴말하지 않고 조용히, 그저 조용하게 사람들의 허기짐을 채운다. 몸과 마음의 허기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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