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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AI는 만능이 아니다

사이버 보안에서 AI의 역할과 한계

by 김정덕

오늘날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와 함께 사이버 위협의 지형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공격자들은 지능화된 기술을 활용하여 방어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를 노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존의 수동적이고 경계 기반의 보안 패러다임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AI)은 사이버 보안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보안 분석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방어 체계를 혁신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방어자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동시에, 공격자에게는 더욱 정교한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AI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를 경계하고, AI가 사이버 보안 워크플로우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증강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명확한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냉철하게 고찰해야 합니다. 본 칼럼에서는 AI가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인간과 AI의 최적의 협업 모델, 즉 '인간 중심의 AI 활용 전략'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1. AI가 사이버 보안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인간 분석가의 지능 증강


AI, 특히 머신러닝(ML)은 인간이 수동으로 처리하기 불가능한 규모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패턴을 식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이를 통해 사이버 보안의 여러 핵심 영역에서 워크플로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인간 분석가의 역량을 증강시킬 수 있습니다.


가. 위협 탐지 및 분석의 고도화

전통적인 시그니처 기반 탐지 시스템은 알려진 위협에는 효과적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제로데이 공격이나 지능형 지속 위협(APT) 앞에서는 무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AI 기반 솔루션은 시스템 로그, 네트워크 트래픽, 엔드포인트 활동 등 방대한 데이터 스트림에서 정상적인 행위의 기준선(Baseline)을 학습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선에서 벗어나는 이상 징후(Anomaly)를 실시간으로 탐지하여 잠재적인 위협을 식별합니다. 특히 사용자 및 엔티티 행위 분석(UEBA) 기술은 내부자의 비정상적인 계정 접근, 데이터 유출 시도 등 내부 위협을 탐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를 통해 보안팀은 수많은 로그 속에서 의미 있는 위협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나. 취약점 관리의 효율화

매일 수많은 새로운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는 상황에서, 모든 취약점에 즉시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AI는 특정 취약점이 실제로 공격에 악용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조직의 핵심 자산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측하여 취약점 대응의 우선순위를 정해줍니다. 또한, AI 기반 정적/동적 분석 도구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코드의 잠재적 취약점을 자동으로 검사하여 '시큐어 코딩(Secure Coding)'을 지원하고, 소프트웨어 공급망 보안을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다. 보안 운영 자동화 (SOAR)

보안관제센터(SOC) 분석가들은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경보(Alert)로 인해 '경보 피로(Alert Fatigue)'에 시달립니다. 이는 정작 중요한 위협을 놓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AI는 보안 오케스트레이션, 자동화 및 대응(SOAR) 플랫폼과 결합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초기 경보 분류, 정보 수집, 티켓 생성 등의 작업을 자동화하고, 명확한 패턴의 공격에 대해서는 계정 잠금이나 IP 차단 같은 초기 대응까지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 분석가들은 자동화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심층 분석 및 전략적 대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습니다.


라. 피싱 및 악성코드 탐지

AI는 이메일 보안 분야에서 이미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활용한 AI 모델은 이메일의 내용, 발신자 정보, 첨부파일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정교하게 조작된 스피어 피싱(Spear Phishing) 공격까지 높은 정확도로 탐지해냅니다. 마찬가지로, 악성코드 분석에 있어서도 AI는 파일의 정적/동적 특성을 분석하여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신종 및 변종 악성코드를 식별하는 데 활용됩니다.


2. AI가 사이버 보안을 위해 '할 수 없는' 것: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역할


AI가 강력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현재의 AI 기술은 진정한 의미의 '지능'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패턴 인식과 예측 모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AI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 전략적 사고와 비즈니스 컨텍스트 이해

AI는 특정 공격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법적·규제적 리스크, 기업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시스템을 차단하는 것이 서비스 중단으로 인한 손실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올지, 혹은 특정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해킹 그룹에 어떻게 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할지 등의 판단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AI는 'What'과 'How'를 알려줄 수는 있지만, 'Why'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전략적 지혜를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나. 창의적인 공격 및 제로데이 위협 대응

AI는 학습된 데이터의 패턴에 기반하여 작동합니다. 이는 곧, 과거에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창의적인 공격 앞에서는 취약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공격자는 방어 측 AI 모델의 작동 방식을 역으로 이용하여 탐지를 우회하는 '적대적 AI(Adversarial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AI를 속이는 데이터를 생성하여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거나, AI를 이용해 더욱 설득력 있는 가짜 뉴스나 딥페이크를 만들어 사회 공학적 공격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창의적인 공격과 방어의 순환 속에서 최종적인 판단과 대응은 인간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 '블랙박스' 문제와 책임 소재

많은 딥러닝 모델은 '블랙박스'처럼 작동하여, 특정 결정을 내린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AI가 정상적인 행위를 악성으로 오탐하여 핵심 시스템을 차단하거나, 반대로 실제 공격을 놓쳤을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AI 시스템의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설명가능 AI(XAI) 기술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며, 법적·윤리적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거버넌스의 문제입니다.


라. 데이터 의존성과 편향

AI 모델의 성능은 전적으로 학습 데이터의 질과 양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학습 데이터가 특정 유형의 공격에 편중되어 있거나, 조직의 특수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AI는 편향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는 특정 지역이나 사용자 그룹에 대한 오탐을 증가시키거나,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인지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인간 중심의 AI 협업, 사이버 보안의 미래를 열다


AI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강력한 '증강 지능(Augmented Intelligence)'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AI의 미래는 완전 자동화된 무인 방어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기계 협업(Human-Machine Teaming)' 모델에 있습니다. AI가 데이터 기반의 신속한 탐지, 분석, 자동화된 초동 대응을 담당하고, 인간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공적인 협업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인간 중심의 보안 문화 구축: 기술 도입에 앞서, 조직 구성원들이 AI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그 한계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최종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보안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투명성과 거버넌스 확립: AI 시스템의 의사결정 과정을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고, AI의 운영과 관련된 명확한 거버넌스 체계를 수립해야 합니다. 이는 AI의 신뢰성을 높이고,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지속적인 모델 개선과 적응: 공격자들도 AI를 활용하여 계속해서 진화하므로, 방어 AI 모델 또한 새로운 위협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개선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사이버 보안의 목표는 뚫리지 않는 완벽한 기술적 요새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공격에도 신속하게 회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사이버 복원력(Cyber Resilience)'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 전략적 지혜가 AI의 압도적인 데이터 처리 능력 및 속도와 결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측 불가능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지능형 방어 체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는 그 여정을 위한 강력한 동반자이지, 목적지 그 자체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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