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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도 다 의미가 있기를

by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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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증(pain)은 통각(nociception)과 구별된다. 통각은 유해자극을 감지하는 과정이고, 통증은 자극을 고통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통각이 생리학적 메커니즘이라면, 통증은 감정적 경험이다. 통각만으로도 위험은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통스럽고 불쾌한 통증이 굳이 왜 필요한 걸까. 통증이라는 기능의 진화적 이익은 무엇일까.


2. 한 연구에서는 통증이 '장기적인 생존'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통각만 있다면 순간만 회피하고 같은 위험이 반복될 수 있겠지만, 통증이라는 고통의 기억이 깊게 남아 있다면 비슷한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손을 떼는 반사를 넘어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기억을 뇌에 각인시켜 같은 행동을 막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불쾌한 감정이 동반되어야 학습과 동기 부여가 강해진다.


3. 인생에 고통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왜 나에게 유독 많은 시련이 닥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괴로움과 아픔에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고통의 기억들이 어쩌면 다가올 시련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atrick Bateson(1991), 'Assessment of Pain in Animals', Animal Behaviour Vol.42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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