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끔 전시를 보러 간다. 딱히 예술적이거나 고고한 취향을 가진 편은 아니지만, 미술관이 가진 분위기가 좋아서 간다.
미술관에 내 의지로 처음 들어가본 건 7년 전이었다. 학교에서 외국에 보내주는 프로젝트에 운 좋게 뽑혀서 친구들이랑 런던과 파리에 2주씩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 때 프로젝트의 주제가 “영국과 프랑스의 공공미술 정책 조사” 였다.
미술도 모르는데 공공미술이라니,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돌돌 끌고 냅다 미술관부터 갔다. 제일 가까운 미술관은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였지만 거긴 너무 커서 엄두가 안 났고, 바로 옆에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National Portrait Gallery 가 있어서 그냥 잠깐 들르는 셈 치고 들어갔다.
마침 그 때 1층에서는 “올해의 초상화” 수상작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정말 신선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간 미술관에서 (실제로 그 미술관 2층부터는 몇백 년 전부터 최근까지 왕족과 귀족들의 수많은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발을 그려놓질 않나, 어떤 사람은 누드화를 그려놓질 않나,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어서 갖다놓질 않나, 처칠 초상화에 자기 얼굴 합성한 것 같은 작품이 있질 않나... 현대 미술의 첨단을 달린다는 런던은 역시! 라고 해봤자 7년 전이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4주 간의 미술관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이었다. 그날은 친구들이 각자 놀다가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서, 나는 정처없이 걷다가 작은 미술관이 하나 있길래 시간을 잠시 떼우려고 들어갔다.
첫 번째 전시실로 들어선 순간부터 두 시간 정도를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커다란 타원형 전시실에는 모네의 <수련> 연작을 길게 쭉 발라놨고, 천장은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데, 그날 따라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 흐렸다가 소나기가 내렸다가 햇빛이 났다가 하는 순간마다 호수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다. 모네가 호수를 보면서 '포착'했던 모든 순간들이 살아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미술관에서는 왠지 시간이 좀 느리게 가는 느낌인데, 조용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가가 고민했던 오랜 시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마주하고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그런 기억들 덕분에 그 이후에 가끔 전시를 보러다니기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좋았던 전시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르 코르뷔지에.
얼마 전에 다녀온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도 꽤 좋았다. 2차 대전, 전투기 폭격으로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데도 무심하게 맑은 하늘을 보면서,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바스라질 것처럼 가벼운지를 생각했다는 사람. 늘 죽음이 곁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결론이 이상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예술가의 가족으로 사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여행 중에 우연히 보았던 <원피스> 전시회도 꽤 좋았습니다. 다같이 엄숙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고무고무 로켓 펀치를 감상하는 모습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