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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Choi Mar 17. 2018

인스타그램 디톡스

가끔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있다.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겁기는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사람들을 만나면 주로 에너지를 쓰는 편이라서, 에너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는 외딴 섬처럼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한 친구가 그런 이야기도 했었다. "세상에는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뺏기는 사람과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어가는 사람이 있다"라고. 에너지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나..  물론 에너지 쓰는 게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것. 별 얘기 않고 앉아있어도 편한 오래된 친구들은 좀 다르긴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한참 쳐다보다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를 하나씩 눌러보고 스포츠나 연예 뉴스로 넘어가서 또 한참 훑어본다. 그리고 다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카카오톡. 외딴 섬에 들어가서 망원경으로 육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 달이었나, 이렇게 SNS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사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마치 영화 <아일랜드>에서 주인공이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하고 느낀 것처럼. 물론 그런 의심을 품는다고 마크 주커버그가 레이저건을 쏘면서 잡으러 오지는 않겠지만.



영화 <아일랜드>  꽤 재밌는 영화였죠. 스칼렛 요한슨을 구해서 냅다 도망다니던 기억밖에 안 나지만...



의심은 사실 아주 단순한 고리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핸드폰이 그만 꺼져버렸다. 덕분에 집에 가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다가, 집에 가자마자 충전! 핸드폰을 켜고 카톡, 인스타, 페북이랑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현자타임이 온 거다. 그래봐야 ‘ㅋㅋㅋ’ 아니면 ‘누구누구 님이 like를 누르셨습니다’ 같은 알람이 뜬 건데, 그게 뭐라고 집에 오는 내내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낑낑거렸지?  


그래서 그 자리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카카오톡, 이메일 알람도 꺼버렸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주기적으로 "주스 클렌징"을 하는데, 사흘 동안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서 만든 주스만 먹는다고 한다. 그러면 몸의 독소가 빠져나가서 디톡스가 된다나. SNS도 사실은 머릿속에 독소를 쌓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Like” 버튼이 눌러질 때마다 뇌의 특정 부분이 활성화 되면서 쾌락(쾌락이라고 하니 왠지 굉장히 나쁜 일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을 준다고 하는데, 왠지 점점 그런 쾌락에 얽매이는 건 아닐까.  


생각보다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피자 한 조각이랑 같이 먹으...면 클렌즈는 안 되겠죠?



사실 매일매일 즐겁고 멋진 삶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아도 - 괜찮다.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실제로 매일매일이 즐겁고 멋지지도 않다! 그게 뭐 어때서.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육지 사람들 구경도 잠깐 멈추고 섬에서 낚시나 하는 게 더 속 편한 것 같다.


답장이 늦는다고 타박을 좀 받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동안 너무 칼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건 내가 앱에 “아직 안 읽은 메시지”를 알려주는 숫자 뱃지가 떠 있는 걸 못 참는  피곤한 성격이라 그렇기는 하다.


그래서 앱도 지우고, 핸드폰 알람도 꺼놓고 뭘 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별로 한 건 없다. 핸드폰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그냥 낮잠도 좀 자고. 딱히 생산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남들이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는 않아서 좋았다.


아참, 인스타그램은 다시 깔았다. 봄이 되니 날씨가 좋아서. 예전만큼 자주 들어가진 않지만.. 뭐 이 정도쯤은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을 잘 안 쓴다네요. 네, 저는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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