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Choi Jan 28. 2018

오전 아홉시의 단팥 도넛

매일 아침 출근길에, 빵집에 들러 단팥 도넛을 하나 산다. 주로 가는 곳은 집에서 나와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파리바게뜨. 오전 아홉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가면, 손님은 별로 없고 종업원들이 갓 구운 빵을 종류별로 소복히 쌓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광경이랄까.


지난 해 여름부터 12월까지는, 회사 근처에 있는 빵집에 주로 갔었다. 단발머리에 빵 모자를 쓴 알바생은 - 빵 모자가 굉장히 잘 어울려서 역시 빵집에서 일하려면 빵 모자를 써야 하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죠 - 매일 아침마다 단팥 도넛을 사가는 나를 기억하고 생긋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곤 했었는데, 어느 아침엔가 들렀더니 갑자기 빵집이 공사 현장이 되어 있었다.


지금 가는 빵집에는 턱수염을 기르고 후리스를 입은 아저씨가 주로 계신다. 여러 모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파리바게뜨는 어딜 가나 맛이 똑같으니까요.


빵모자 사진을 찾으니 죄다... 새로 가는 빵집 아저씨가 빵모자를 안써서 다행인 것 같군요


그래도 이 턱수염 아저씨는 나를 단 3일만에 기억해서 꽤 감탄했다. 3일째 갔을 때 매장 가장 안쪽에 있는 단팥 도넛 코너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갓 나온 다른 빵을 하나씩 진열대에 올리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흘끗 보더니 "도넛 아직 안 나왔어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꽤 시크한 말투와 표정이었지만 나를 기억해주다니. 하긴 매일 시커먼 옷을 입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도넛으로 직진하는 남자는 꽤 기억하기 수월한지도 모르죠.


아침에 오피스에 도착하면, 바로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도넛과 함께 먹으면서 미팅에 들어간다. 설탕과 카페인의 강력한 조합은 아침 잠을 번쩍 깨워주기 때문에 빠르게 일 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 샐러드나 된장국처럼 뭔가 건강한 아침밥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샐러드는 사먹기에는 너무 비싸고, 된장국을 끓여 아침밥을 차려먹을 만큼 부지런하려면 아무래도 다시 태어나는 편이...


이건 오후에 찍은 사진. 아침에 가면 바닥에 안 보이게 소복하게 도넛들이 쌓여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굉장히 마음이 풍족해지는 풍경이죠.


갓 구워 나온 단팥 도넛의 가장 큰 장점은 굉장히 쫀득쫀득하고 따뜻하다는 점이다. 물론 갓 구운 빵이 뭔들 맛이 없겠냐만... 심지어 예전에 파리에서는 바게뜨를 갓 구워주는데 그것도 굉장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파리의 빵이란 또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단팥 도넛의 경우에는 특히 이 쫀득쫀득하고 따뜻한 타이밍이 금세 지나버린다. 며칠 전 몹시 추웠던 어느 날은, 사무실에 오는 30분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려서 굉장히 슬펐다. 그래서 다음 날은 사자마자 하나를 먹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커피랑 같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길에서 빵을 먹으면서 다니면 다들 한 번 더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더라고요. (이미 해봤습니다.)


매일 아침 빵을 먹는 게 건강한 습관은 아니지만, 뭐 매일 아침 위스키를 한 잔씩 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지 않을까. 정 뭐하면 다른 건강한 습관을 하나 더 추가하면 되겠지 - 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파리에서 먹었던 바게뜨는 파리바게뜨의 바게뜨는 아닙니다. 하하하하

매거진의 이전글 김동률을 좋아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