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러제트를 보고
시대극이라고 더 강렬한 거 같은 영국영어는 알아듣기 어렵다. 극이 내린 뒤 자막으로 <이제 전 세계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아이에대한 소유권을 주장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10년 영국, 1920년 러시아, .. , 스위스, 멕시코, 그리고 2015년 사우디아리비아. > 하고 나오는데 아주 조금 울고 말았다. 생각보다 스위스가 1940내지 50년대로 늦어서 관객들이 술렁였고, 인도와 독일은 같은 해에 생겼다. 러시아는 스위스나 독일보다 훨씬 빨랐는데 1930년대보다 더 빠르거나 늦어도 그 즈음으로 기억한다. 올리는 작은 영화관의 몇 안되는 세명의 슬라빅, 아시안, 페르시안 여성과 함께한 남성관객이었다. 대부분의 나라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여성참정권이 생겼다. 한국은 광복과 함께 식민지 시대에서 벗어나며 인권에 처음부터 여성과 남성이 동시에 기재됐다.
잘 들리지도 않는 영어 와중에도 메릴스트립이 law breaker 대신 law maker가 되자고 선동하는 문장이 있었다. 메릴 스트립은 극중에도 포스터로만 나오다가 딱 한 장면 나오고 사라지지만 영화의 주연으로 기재됐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자는 여성참정권 운동의 창시자 격이었던 뱅크허스트로 드물게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참정권 온건파 운동가였지만 50년동안 딱히 달라지지 않는 실정에 방향을 바꿔 극단적 폭력성을 띠는 형태로 투쟁했다고 한다. 서프러제트란 그래서 여성 참정권운동 과격단체를 말한다. 실제로 온건파 여성운동가가 12년동안 해내지 못한 것을 과격단체가 단 몇달만에 해내었다니, 극 중 캐리멀리건이 창문을 깨트리고, 공장을 폭파하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너희는 들으려 하지 않지 했던 것이 사실인 셈이다.
친구 파테마는 영화가 너무 감성적이라고도 했는데 어떤 스토리라인이 없이 일련의 사건 나열이라 별로 잘 구성된 영화 같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겐 한 여성이 그와 세상과의 거리를 인식하기까지 변화가 잘 그려진 영화였다. 당시 서프러제트들은 남성들에겐 비웃음을 샀고 여성들에게는 외면받았다. 캐리멀리건은 그들을 외면했던 한 사람이었고 후엔 비웃음과 외면의 대상이 되었다. 그 변화의 시발점은 같은 일터의 여자아이가 보스로부터 성폭행당하고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조차 못하는 아이, 또 이에 침묵하는 주변이다.
이 후 운동에 합류하면서 그의 가정은 부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운동에 참여하고자 결정하는 이유가 명확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이는 남편으로부터 아이를 빼앗기고 내것이라 생각했던 가정으로부터 쫓겨난 다음이다. 일전에 얼떨결에 선 법정에서 왜 내가 투표권이 필요한지 사실은 잘은 모르겠다던 이 사람은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를 빼앗긴 후 어머니로서 내 아이를 되찾아올 수 있는 권리 즉 내 아이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평범한 민중 속의 여성들이 아이를 안아주고 일터에 돌아온 남편에게 차를 내오는, 하얀 백합을 들고 희미하게 웃는, 역사 안에 만들어진 여성성의 이미지는 더 많은 유리창을 깨트리고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쓰고 폭탄을 내던지는 폭력으로 변했다. 감옥에서 곡기를 끊자 음식물을 강제로 흡입당하며 비명질렀다. 아이를 빼앗겼고, 임신 후 싸우기를 포기했다. 한 때 운동의 선두에 있던 자는 건강이 악화되어 지지자였던 남편에 의해 발이 묶였다. 포기와 좌절과 고통이 영원에 이르렀을 때 그 중 누군가(에밀리, 실존 인물) 승마 행사에 참여한 왕의 말 앞에 뛰어들어 자살함으로써 의사를 표현했다. 극은 그의 장례식 장면으로 끝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나타나는 그나마 가장 큰 것 같은 변화는 -사실 영화 안에서 어떤 승리를 목격할 순 없다- 서프러제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여성 참정권자들을 협박하고 미행하고 조사하고 감옥에 잡아넣던, 이 불온한 사상이 대중을 선동하는 것을 막고자 했던 선두격의 남자였다. 죽어나가면 빈 자리를 새로이 채웠다가 다시 맞아 끌려나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이 남성의 흔들리는 시선을 통해 그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혼란을 볼 수 있다.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