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페스코
2010년도 말 그 즈음부터 의도적으로 고기 섭취를 줄였다. 근래 한 삼년은 채식주의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해 고기를 안먹는 삶을 살아왔다. 동물 인권 혹은 사육상태에 대해 항거하는 견고한 의지까지는 아니었고 단지 과한 육류 소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인생은 정도가 필요한 거지 극단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한달에 한번 육류 섭취 등의 규칙을 시간이 갈수록 고려하긴 했다. 그러나 오늘은 고기를 먹지않겠어요 내지는 고기먹는 날이 아니에요라고 할 때 어디서 코에는 코걸이 귀에는 귀고리를 걸려고 하느냐며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가끔은 좀 극단적이 구석이 있는 난 그럴 바에야-잘못된 극단적 선택의 예- 아예 고기 섭취를 그만두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을 선택한 나의 무의식에는 육류 고기 소비에 대한 반향이라든가 동물들의 사육 환경에 대한 재조명 이상의 개인적이고도 조금은 다른 피어 프레셔에 대한 짜증이 있었다. 고기 잘먹고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남학생이 다수인 커뮤니티 내 술자리 및 회식자리에는 그들과 부담없이 잘 어울리리는 털털한 또래 여학생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가 존재했다. 치맥 좋아해요, 삼겹살 먹으러 가자, 야식은 바로 보쌈이랑 족발이지. 대학에 입학하고 그들과 무리없이 어울리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나는 어울리려 애쓰다 지쳐 나가떨어진 다음 졸업반 즈음에 채식주의자가 됐다. 어쩌면 시작은 아 나는 모르겠다 같은 일종의 반항 같은 거였다고, 뒤늦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법 엄격하게 유지해나갔던 나에게 사람들은 잔인했다. 나는 마른 편이라기보단 되려 덩치가 있는 편인데 너처럼 고기먹게 생긴 애가 고기를 안먹는 게 말이 되냐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거짓말하지마, 너 먹는 거 봤다고 우기던 친구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내가 일년내내 다이어트 중인 줄 알았다. 한 예능프로에서 채식주의자라는 여배우가 고기먹은 걸 봤다는 의혹에 사실 입에 넣었다가 남들몰래 뱉었다는 고백에도 이해가 갔다. 너무 많은 사랑과 관심에 지쳤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고기를 안 먹는 사람에게 각박했을까.
이제 조금 다른 사회에 산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게 좀 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여기도 고기 소비량이 많은 국가라 베지테리안이란 게 일반적인 문화권은 아니다. 비건이란 게 쿨하고 힙하다는 컨셉의 느낌이 좀 있어서, 되려 애매하다. 난 딱히 쿨한 인간은 아닌데. 또한 무슬림, 힌디 등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당연히 먹지않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자랐지만 고기를 먹는 행위가 되려 의지가 있는 그들 나름의 운동인 친구들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주민 및 외국인의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해 존중해야한다고 강박적으로 교육받은 청년들이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채식주의자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럼 치킨 먹자, 날개달린 건 고기 아닌데, 라고 일년째 닭을 권해주는 제 나라에서 종교적인 의미의 엄격한 비건이었던 M도 있고, 함께 고기먹는 채식주의자의 컨셉을 미는 A도 있다.
까닭에 이제는 나는 고기섭취란 단어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고 또 채식주의자임을 그만두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얗고 빨간 닭, 돼지, 오리, 살코기들을 쉽게 사지 못한다. 글쎄. 이제야 과도한 육류소비를 지양하고 사육상태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진정한 베지테리안이 된 게 아닐까?
(2015.05.13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