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갑천변에 서있을 내 자전거나 가져오자 하는 마음으로 쪽문을 나섰다. 오늘따라 햇살 아래 서 있기가 매우 부끄러웠다. 퍼런 커다란 티셔츠 쪼가리 입고 룸메가 언니 이거 잠옷 아니에요? 그럼 추리닝이에요? 했던 체크무늬 반바지 걸치고 스리퍼 찍찍 끌고 나갔다. 저녁밥 먹는 시간이라 아는 사람 만날까 봐 두려웠는데 시험기간이니 조금은 안심했다. 그런데 J 만남..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평화로운 갑천, 내가 이래서 밤 운동을 끊을 수가 없다 정말. 어스룩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 귓가에 들려오는 멀리서 떠들썩한 따뜻한 소리들, 여름의 밤 산책은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이 전부 기억이 나지 않게끔 해준다. 그날 하루 편히 잘 수 있도록.
오늘은 그러다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처음엔 도를 아십니까 내지는 ㅎ빛 교회 오시겠습니까 같은 건 줄 알고, 경계를 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 학교 다니는지, 전공은 무엇인지, 요런 질문들을 하셨다. 일련의 대화 끝에 생각보다 아주머니는 대답을 듣는 것에 관심도, 또 그 대화엔 다른 의도도 없으셨다. 그냥 우린 대화가 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어디 사시는데요? 장 보러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안 무거우세요? 아까 버릇없어서 죄송해요. 자꾸 저한테 사람들이 도를 아시냐고 물어봐서요.
처자가 요새 처자 같지가 않네, 요새 애들이 워낙 당돌해서. (그렇죠, 요새애들 참 당돌하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머리가 좋은 가봐요? 파워우먼이네요. 대학원도 갔으면 그럼 회사는 어디로 가나요?
머리 좋지 않아요. 그냥 사는 거에요. 회사까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딘가 가지 않을까요.
둘이 그렇게 걷다가, 아주머니께서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는 게 우울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간호조무사 일도 하고 케샤도 보고 그랬는데 하다 보니 적성에 안 맞잖아요? 그런데 나는 가 정주 부니까, 식당일을 해보니까 적성에 맞더라고요. 그렇게 살고 있어요.
해질녘, 갑천변 함께 걸으면서, 귓가엔 어린애들 떠들썩한 메아리가 들렸다. 참. 사실은 사람 사는 거 별거 없이 수많은 일개미들의 삶처럼 다 똑같았다.
헤어지며 나에게 열심히 사시라고 하셨다. 나도 아주머니 행복하시라고 인사드렸다. 그제야 옆에서 걸으며 얘기 주고받던 아주머님 얼굴을 제대로 보았는데.. 한 것이, 왠지 내 얼굴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하 오늘 저녁 좋았습니다.
[출처] 갑천변에서 만난 아주머니|작성자 gomer
/2014.06.14. 23:28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