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도서관에 있다 문 닫는다고 종이 쳤다.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떡하지도 잠시 비 한두 번 맞아보나 그냥 맞으려 했는데 너무 쏟아지는 비에 녹색 오리털 파카 털이 비 맞은 오리가 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뒤따라 나오던 학생이, 어디가? 서측이야. 미안한 표정, 동쪽에 산다고 했다. Thanks for asking me. 훈훈한 밤이네? 풀지 못한 숙제 때문에 내일 준비 미완성인 랩미팅 때문에 한쪽 우울했던 마음이 금세 환해졌다.
자전거 타고 휭 날아가려고 모자 쓰는데 한 남자분이 어디 가세요? 근처에 차를 주차해놓았는데, 안 쓰는 우산 하나가 더 있거든요. 반대편으로 걸어가서 투명색 우산 하나를 받았다. 안 돌려드려도 되나요? 어떻게 돌려드려야 하죠? 하는데 굳이 돌려줄 필요 없다고 해서 그냥 받았다. 괜히 연락처 받고, 또 돌려준다고 연락하는 게 더 민폐인 것 같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자전거 가지러 내일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귀찮아 가지러 갔는데, 한 학생이 우산도 없이 고민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 고마움 나도 너에게 전달해주는 밤이 되려고, 어디 가세요? 어둠 속에서 얼굴을 드러낸 학생은 도서관 3층에서 나와 함께 반나절 끙끙거리던 노랑머리 남자애였다. 언어를 바꿔서 어디가? 서쪽! 같이 갈래? 그리하여 투명색 싸구려 우산 아래 나란히 동행하였다.
코딱지 만한 기숙사 방보다 도서관이 프라이버시가 지켜진다는 이 남자애, 커다란 체구에 금발치곤 칙칙한 노랑머리 애가 말해주기를 한국에 와서 처음 오는 비라고, 빗소리 파일 듣는데 비가 오는 소리를 들으면 집중이 잘된다고. 쪽문까지 이 시간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서, 빗소리 들으면서 집중하면 공부 잘된다는 게 귀여워서 투명색 우산 주고 왔다. 나도 이거 받은 건데 괜찮다면 선물이야, 너 줄게.
할 일도 할 일이지만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친절과 인연 고마워. 기숙사 창밖으론 한바탕 가을비가 쏟아지고 있다. 이 비가 다 쏟아지면 내일부턴 추위가 시작되겠지? 괜찮다. 오늘 밤만큼은 외롭지 않고 포근하니까
/2013.11.25.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