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친구, 크리스마스

by gomer

1. 동생이 11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8시간의 시차를 넘어 도착했다. 방학전 마지막 수업을 듣고 공항으로 동생을 데릴러 갔다. 간발의 차이로 미리 도착해 기다릴 수 있었는데 비행기가 연착되고 짐이 늦게 나왔던 모양인지 1시간동안 기다렸다.


개찰구(?) 앞에서 가만히 사람들의 만남을 지켜봤다.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도 있었고, 아직은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소년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있었다. 소년이 개찰구를 나오자 가족들 빨강색 얼굴만한 하트를 정신사납게 흔들어댔다. 남자는 여자가 나오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유난을 떨었고 여자가 주변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입을 맞췄다. 모험이라도 다녀온 걸까 피로해하는 늙은 부부를 기다리는 젊은 부부, 킴과 다니엘의 결혼을 축하해요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기다리는 가족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와 아빠, 유럽여행온 사촌들을 기다리는 형제, 여행온 언니를 기다리는 유학생인지 교환학생인지 학생 등 때로는 닮은 듯 안 닮은 사람들이 포옹하는 장면을 보았다.


몇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이 차올랐다 메마르기를, 감정을 추스르기를 서너번 반복하고 나니 내동생이 나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너기다리느라 나 목빠지는 줄 알았잖아. 눈 한번 흘기고 버스 예매했다.


2. 동생이 오기 전날 요나스를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봤다. 대전에서 만난 요나스는 천방지축에 호기심많고 넘치는 에너지에 나는 실은 지쳤었다. 그 시기가 내가 안 좋은 시기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게 많았는데 그 쾌활함이 감당이 안되기도 하고 또 질투가 나기도 했던 것 같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긴 했었지만 딱 1년만에 다시만난 이 친구에게서 나는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3개월 객지에서의 삶보다야 침착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애가 맞나 싶었는데 성당아래 앉아 글루바인 홀짝이며 얘기하다 보니 금새 어색했던 느낌도 사라졌다.


요나스 동생 남자친구 집에 갔다. 한국에서 만났을 때야 많아야 전공이나 쓰는 보고서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 여동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요나스를 놀랍게 닮아있었는데 수줍음 많은 미인이었다.


3.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은 요나스네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보냈다. 요나스네 어머니표 집밥은 아래와 같다. 고기와 빵으로 만들어진 오뎅이 둥둥 떠다니는 곰국, 샐러드, 야생 흑돼지 고기, 손수 만들었다는 산딸기 라즈베리 소스 부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동생과 나는 하트모양 앙증맞은 케이크에 라즈베리 소스를 듬뿍 끼얹는 그 대담함과 투박함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다른 생김새를 가진 여동생 흉내를 좀 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는 친척들이 모여들었는데 하나둘 모여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맛있게 먹고 웃는 모습이 나와 다른 인종, 다른 언어를 사용함이 무색하게 친숙하였다.


4. 이 블로그에 아마 요나스를 만난 밤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날 밤은 나에게도 인상 깊은 밤이었는데 매우 지쳐있었고, 도서관에서 나오니 비가 내렸다. 그 다음날 교수님을 뵈러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게 화가 났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또다시 내가 내린 결정들에 대해 2년의 여느날처럼 후회가 밀려왔었다.


비가 생각보다 거세서 비를 맞으며 걸어갈 짬이 안났다. 언제나 그칠까 하고 무념무상 먼산 바라보고 있는데 도서관 근로장학생인 대학원생인 게 분명한 남자가 투명색 우산을 빌려주었다. 오래 있으셨나봐요? 니 사정이 내 사정이고 우리 사정이지, 싶은 측은한 눈길이 고마웠다. 빌려준 우산에 마음이 따뜻해져 온기를 나같은 사람에게 나눠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뚱멀뚱 도서관 현관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남학생에게 어디로가세요? 물어보았는데 요나스의 환한 미소가 되돌아왔다. 사실은 한국인이 아닌 줄도 몰랐다. 사실 얘는 비를 맞으나 안맞으나 별 상관없었던 것 같다.


우산을 쓰고 쪽문까지 갔다. 빗소리를 녹음한 파일이 있는데 도서관이나 사람많은 데서 들으면 좋다고 했다. 특이한 덩치큰 애. 첫 인상은 그랬다. 신축가는 인터네셔널 기숙사 쪽 오솔길에서 헤어지고 우산은 얘한테 줬다. 시간이 흘러 난 요나스네 집 식구들에게 엄브렐라걸이 되어 있었다. 그 우산을 얘네 집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줄까? 하고 묻길레 손사래를 쳤다.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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