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서 느끼는 것3

by gomer

언젠가부터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선명해진다. 내가 어떤 분야의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지, 그 분야의 특성은 어떤 것인지,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계속, 꾸준히 갈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 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바퀴의 톱니같이 작은 일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기를, 그 작은 일이 좋은 방향으로 가는 길 위라는 걸 확신할 수 있기를. (2013.09.13)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 너무 오래됐다. 일하고 밥 함께 먹고 일하고 때론 술 한잔 후 퇴근하는 어떠한 문화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생각해보면 기억이 잘 안 날정도로 서서히. 내 탓인 것 같다.

실험 수업을 하나 듣는데, 파트너가 있다. 주말에 만나서 도서관 컴퓨터에서 보고서 내용 합치고 확인받을 내용 주고받고 언제까지 보내줘, 하고 등을 돌리는데 눈물이 핑, 파트너가 있다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찡했다.

잎차에 뜨거운 우유 뜨겁게 한잔 받아와 노트북 두드리고 있다.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전에 운동하고 포도 한 송이 사올까 말까 고민 중. (2013.09.28)


마지막 두 달, 매우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던 2013년이었다. 끙끙 앓았던 시간만큼이나 또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잘 알게 되었던.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가고 싶은 길과 또 동시에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진실된 것이 뭔지, 답답할 때 참는 법,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과 잘 지내고자 노력하는 법, 해결하기 싫은 인간관계는 있어도 좋게 풀어나가지 못할 관계는 없다는 것, 가장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폭언을 퍼붓지 않는 것, 조금이라도 덜 비열해지고자 노력하는 것,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떤 것이든지 그 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과 정말 시간은 흘러갈 뿐이었단 것과 그래서 행동에 대한 책임, 그리고 진심. 무지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고 비참했고 처연했던. (2013.10.25)


좋은 것만 되새기기로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소소한 학회에 갔는데 교수님이 발표하시며 내가 만든 발표자료에서 잠시 멈춰서 우리 랩에 이거 관련된 연구를 하는 학생이 있다고 말씀하신 거, 그때 내가 아 내가 여기 평생 있을 마음이 없을지라도 있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전문가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자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 (2013.11.10)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건 맞지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방향키를 쥐고 있는 나라는 생각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확고해진다.

유독 밤샐 날이 많았던 일주일의 어느 밤, 룸메와 등을 맞대고 앉아 늘어놓아진 푸념을 주고받았다. 그에게 이십 대의 대학생활을 보내며 인생이란 노력 이상의 머리 잘 돌아가는 똘똘한 놈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 했다면, 나는 정반대를 느껴가는 편이다. 머리 잘 돌아가고 똘똘한 놈들보다 결국 그 분야 길의 끝는 결국 포기 못한 자가 남아있는 것임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2013.12.01.)


가끔씩, 비가 오는 밤이나 뭐 그럴 때, 연구실을 나가면서 쓰게 될 말을 생각하곤 하는데, 곧잘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지나가면 다 좋은 일이라곤 하지만, 좋은 일만큼이나 안 좋은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인 것은 도대체 왜일까요.. (2014.03.13.)


지난 금요일에 그가 사람들을 불러 한잔 했다. 유쾌한 자리었음에도 슬퍼하는 게 느껴져 나도 따라 슬펐다. 취직 기념 턱이라 했지만 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싫은 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았지만, 딱 봐도 스타일 안좋은 사람과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얼마 전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랩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혼자 이력서 내고 직장 알아보러 다닌 모양인데, 맘 아팠다. 직장생활 접고 들어왔다는 것을 들어왔기도 했고, 박사 끝나고 포닥 무조건 밖으로 갈거야 같은 말을 해왔어서 그렇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종이 접어버리듯 나 취직했다 연구실 나간다 하고 통보했지마는 그게 보이는 것만큼 과연 쉬웠으랴 싶다.

그렇게 마음 바꾸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미련과, 또 스스로에 대한 포기는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을까. 오빠가 어디로 가든지 같은 길이 있다고 믿는다. 원하는 삶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2014.07.06.)


옮겨적고 나니, 이 기록은 나만의 기록이 아닌 그때 그 장소, 지금도 앞으로도 자신의 자리에 서 있을 우리 모두의 기록이란 생각이 든다. (201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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