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이라크-니스-뮌헨-카불-로이틀링엔
뮌헨 쇼핑센터 테러가 막 전해지고 있을때, 아직 알려진 것은 없고 사망자가 9명이며 부상자는 20명이상으로 보인다, 용의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도, 관련 정보 역시 없을때 내 친구들이랑 같이 내 방에 있었다. 그날 밤버스를 타고 취리히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각자의 폰으로 뉴스를 업데이트를 받으면서 작은 방안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과정을 시작한 그 해가 기점이라도 되듯 유럽이란 땅에는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메르켈이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하고(사실 되게 신랄한 절믄이들이 얘기하기를 그건 이나라 정치인들 포지션이고 이미 그리스와 이탈리와 같은 곳에서는 난민을 수용한지 한참 되었을 뿐더러 인프라의 한계가 오는 시점이라 한다) 외국인과 이민자에 대해 보수적인 목소리가 커지기 바로 전 비자를 받았던 우리는 매 경과과정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이야기는 어떤 명확한 의견의 그러므로 이래야 한다라기보다 다양한 국적의 언론에서 다뤄지는 정보들과 문화와 종교와 역사적 기반에 대한 것들이었다.
무슬림의 이데올로기가 폭력적인지, 유러피안의 이데올로기와 과연 공존할 수 없는지, 실패한 것으로 보여지는 프랑스의 이민자 동화정책, 테러집단의 시초가 어디인지 어디서 돈을 조달받는지, 왜 이 사태까지 이르렀는지,난민이 어느 선의 인프라에서 수용되고 있는지, 정부가 지원하는 정도와 또 감시를 피해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과 그것이 어떻게 처신되는가에 대한.
그리고 갈수록 극단화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되려 말을 잃었다. 우리가 외국인이자 이방인, 나아가 잠재적 이민자가 되어 살아가는 이 곳에서 피부로 와닿는 그 사건사고들은 때로는 더 논의하기조차 버거웠다. 한 친구는 3시간동안 4번의 검문을 당했는데 파키스탄인인 그는 또 캐나다 시민권자라서(캐나다인은 비자없이 들어온다) 비자가 애초에 없기 때문에 검문은 험난하기 그지없어 이젠 방 한발자국도 나오기 싫으니 너네끼리 저녁먹으라는 웃픈 이야기를 전해줬다.
삼일에 한번 꼴로 크고 작은 테러가 있었는데 가장 근래에는 한 난민 청년이 임산부 포함 두명에게 도끼를 휘두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이 벌어진 동네, 로이틀링엔에 인턴쉽가있는 파테메랑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페르시안이면서 무슬림이 아닌 그와 나는 사회와 문화에 대해 무엇보다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막상 그 사건 후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런 말만이 오갔다. 너도 여기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취리히에 있는데, 스위칠란드 및 졀먼 국적의 친구의 친구, 룸메이트의 친구 etc로 이루어진 스위스인의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담배를 나눠피우고 술에 취한 채로 저무는 밤의 한가운데, 누군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다.
남아프리칸공화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반 남아프리카인이라는 이 스위칠란드 국적의 남자아이의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그의 논리에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이건 기고 저건 아니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스위스는 단 한명의 난민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중동사람들은 돈이많은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모든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며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이 아이들에게 물어본 투표율은 35퍼센트였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2016. 7. 24.
그래서 지난 여름에는 슐러스에서 맥주마시다가 불꽃축제보고 테런 줄 알고 심장이 두근두근해서 울것 같은 표정으로 집에가자고 하다가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201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