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by gomer

수영장.


한겨울에는 이상할만큼 물 온도가 꽤 따뜻했고 락스 냄새가 잘 나지 않았다. 소독, 청결이 수영장의 잣대가 되지는 않는 듯, 수영모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이 하얀 수영모가 아이덴티티라도 된다는 양 언제나 잊지않고 착용했는데 종종 이 외국인은 왜이리 유난인가 싶었을지도 몰랐다. 탈의실의 후덥지근한 사우나의 느낌이 좋고 집에 있으면 잘 씻지도 않는데다가 요새 운동할 기회도 별로 없어서 종종 가곤 했다.


어느날 방문한 수영장은 수영장을 구획별로 나누는 라인이 싹 비워진 채 하나의 물통같은 비쥬얼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물통같은 수영장에 어디가 몇 열인지 알 수 없는 수영장에, 누가 이 나라를 규칙잘지키는 나라라 했던가!


어린 시절, 책상 줄을 너무 맞춰대다가 심지어 담임선생에게 혼난 적까지 있는(줄을 안지켜서가 아니고 줄 지키는 것에 너무 강박적이라서) 그 행태에 한동안은 짜증을 내며 충돌할까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내가 누군가의 선로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수영을 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그 규칙없는 수영, 줄과 열이 없는 수영, 내가 수영하는 공간의 너비가 정해지지 않은 수영 그 헤엄의 자유로움에 또 푹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각잡힌 수영장에서는 앞사람의 물장구에 또 뒤따라오는 사람의 속도를 스스로에게 새기며 앞사람과 일정 간격을 맞추고 뒷사람으로부터 추월당하지 않으려 했다면 이 곳에서는 속도를 생각하기보다는 나는 지금 편안하게 수영하고 있나, 물살의 흐름을 잘 타고 있나와 같은 것들을 확인하기 좋았다.


이곳이 바다수영은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환상..인지 착각마저 느꼈는데 무쪼록 나는 이곳의 무심한 관리자로부터 인과한 이 바다같은 수영장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자주 충돌하고도 아 미안, 잘못했어 하는 머쩍음마저도 사람의 온기 및 스킨쉽으로 포장되어 어떤 자유로운 한마리 바다속 물고기가 된 듯한 환상의 일부가 됐다.


날이 길어지기 전에는 5시반 내지 6시에 해가 졌는데 그 즈음 1층 수영장에 내리뻗는 지는 햇살에 나는 이 인간의 몸매를 뒤집고 물속에서 뻐끔뻐끔 폐로 숨이란 걸 쉬며 제 주제도 잊고 참말로 바다속 물고기같이 행복했다.


자유영하는 여학생이 발차기는 좀 힘이 없어도 왼몸과 오른몸을 뒤집을때면 유독 인어 같았고 두 중년 남성은 얼굴을 빼꼼 내밀고 개헤엄을 치시며 수다를 끊임없이 떠시는데 그 모습은 참 구수하였다. 가장 아름다웠던 착각은 사람들이 붐빌 때, 그들이 일렬로 평영하는 와중에, 바다속을 함께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거북의 뒤태를 바라보았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수영장 관리자 알바가 바뀐 지난 주였다. 그는 모처럼 깐깐해서 입장하는 한마리의 고기가 되려 입장하는 자들에게 샤워는 하고 왔냐 찬물샤워 더운물샤워? 를 일일이 웃으며 물어봐주었고 그에 합당한 수영장은 레인이 모두 깔린 1열로 수영했다가 그 열로 돌아와야 하는 질서와 공간이 생긴 인간의 수영장이었다.


처음엔 아 이래야 좀 효율적이지 사람이 많이 와도, 하고 수영하는데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또 동물원같인 짐승 맘이 이런 것일까. 인간답지 않은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나는 후에 친구에게 징징거렸다.얼마나 아름답지 않았느냐고, 각잡힌 인간의 수영이 아니라 우리, 바다 위에 노니는 물고기같지 않았느냐고.


다음 주의 수영장에는 레인이 좀 덜 깔려 있으면 좋겠누나.

/2016.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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