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즈음 이사장이 졸업식서 명문대 진학율이 나빠진 것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연설이 화두에 오른 그 학교, e 여고를 십년전 2008년도 겨울에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모교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3년간의 고등학교 시절은 기억하고싶지 않은 것들이 추억하고 싶은 일들보다 많았다. 어느 시점부터는 추억할 만한 것 조차 하나 없어졌는데 무엇보다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음을 이야기할 친구조차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입시열이 한창일 때였다. 막 바뀐 입시학원장이었던 이사장과 그의 은사라는 우아한 교장 선생님은 근처 명문으로 소문난 두 여고를 인식하는 발언이 잦았다. 과열된 입시경쟁은 사춘기 예민한 여학생들의 잔혹한 행동들을 부추겼고 누군가는 이를 묵인했다.
고등학교 3학년 조회시간, 담임 선생님은 넥타이를 똑바로 매지않았다는 이유로 친구의 뺨을 때렸다. 십년이 지났는데 휘청거리던 친구의 걸음과 선생님의 그의 불만있는 행동이 가소롭다는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좋은 일도 있지 않았을까. 좋아하던 수업시간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있지 않았을까. 보호받았어야 할 열일곱 열여덟 아이들의 고작의 입시만을 위한 경쟁들과 이만을 위해 만들어진 잔혹한 환경 속의 내가 뺏겨버린 가장 예뻤을 기억들을 스스로 지워버려 가끔은 씁쓸했다.
그리고 오늘은 인터넷에서 누군가 좋아요를 올린 동영상을 보게 됐다. 작년 수능을 축하하는 선생님의 응원 영상이었는데, 그 중에는 십년의 세월이 지난 익숙한 얼굴의 선생님도 계셨다. 찍는 학생도 선생님도 즐거워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났다. 귀신에 홀린듯 연달아 유튜브 영상을 봤다. 축제기간에 선생님이 부른 노래 영상에 환호하는 학생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그 학교의 학생들이 행복하고 또 즐거워보였다.
고교시절에 대한 대상없는 적의, 이젠 아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안좋았던 기억들이 잊힐 수 있을 것 같다. 잔혹하고 비열하게만 기억됐던 속삭여지던 소문들보다 그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먼저 떠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묵인한다고만 생각해 도리어 화가 치밀어올랐던 그 선생님들의 침묵이 어쩌면 그들도 나만큼 미워하고 포기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간직할 추억들이 생기고, 인생을 함께 할 선생님과 친구들이 생기고. 조금은 그 학교가 내가 다녔던 학교보다 학생이 사랑할 수 있는, 행복하게 편안하게 배워나가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은 모교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사실, 사회는 그럼에도 버텨나가는 사람들이 바꿔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04.17.17 기록